송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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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마을에 터를 잡은 풍천노씨 입향조이자 문신. 노숙동(盧叔仝)[1430~1463]의 자는 화중(和仲), 호는 송재(松齋)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1430년 3월 임인일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확목리 화목마을에서 3남 3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승사랑(承仕郞) 용구현령(龍駒縣令) 노천계(盧天桂)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통정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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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출신인 노숙동의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판각한 조선 후기 책판. 노숙동의 자는 화중(和仲)이고, 호는 송재(松齋)이며,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1427년(세종 9)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교리, 집현전 교리, 사헌부 감찰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자치통감훈의(資治通鑑訓義)』·『치평요람(治平要覽)』 등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고려사』의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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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이자 문신. 관직은 지충주부사와 병조판서에 이르렀으며, 노모를 부양하기 위하여 계속 외직을 지원하는 등 효행으로도 이름이 높았다. 경상남도 함양군 북덕곡 개평촌[지금의 지곡면 개평리]에서 태어났다. 증조는 예조참판 송재(松齋) 노숙동(盧叔仝)[1403~1463], 조부는 졸존재(拙存齋) 노분(盧昐)[1437~1478], 부친은 참봉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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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이자 문신. 관직은 지충주부사와 병조판서에 이르렀으며, 노모를 부양하기 위하여 계속 외직을 지원하는 등 효행으로도 이름이 높았다. 경상남도 함양군 북덕곡 개평촌[지금의 지곡면 개평리]에서 태어났다. 증조는 예조참판 송재(松齋) 노숙동(盧叔仝)[1403~1463], 조부는 졸존재(拙存齋) 노분(盧昐)[1437~1478], 부친은 참봉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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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있는 사당.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있는 개평마을의 서쪽 외곽에 위치하고 있다. 개평마을 외곽으로 흐르는 평촌천을 가로지는 동산교를 건너 나지막한 언덕길 중턱에 있다. 1925년 풍천노씨 문중의 두 선현인 송재(松齋) 노숙동(盧叔仝)[1403~1463]과 옥계(玉溪) 노진(盧禛)[1518~1578]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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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개평마을에서 태어난 물재 노광리의 문집. 노광리(盧光履)[1775~1856]의 호는 물재(勿齋),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개평마을 송재(松齋) 노숙동(盧叔仝)[1403~1463]의 후손이다. 경서와 사기에 통달하였고, 성리학에 더욱 깊었다.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의 「성학십도」를 모방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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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유학자 노광리가 편집한 소아과 전문 의서. 노광리(盧光履)[1775~1856]의 호는 물재(勿齋), 본관은 풍천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개평마을 송재(松齋) 노숙동(盧叔仝)[1403~1463]의 후손이다. 경서와 사기에 통달하였고, 성리학에 더욱더 깊었다.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의 「성학십도(聖學十圖)」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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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에 거주한 송재 노숙동의 문집. 노숙동(盧叔仝)[1403~1463]의 자는 화중(和仲), 호는 송재(松齋)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1427년(세종 9) 문과에 급제하고 1436년 문과 중시(文科重試)에 을과로 급제한 뒤 집현전 교리, 예문관 직제학, 형조참판, 호조참판 등을 지냈다. 세조 때 청백리에 녹선(錄選)[추천되어 뽑힘]되었으며,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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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에 존재하는 전통건축 형식으로 건립된 가옥. 경상남도 함양군은 영남지방을 대표하는 성리학자를 배출한 고장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경상남도 함양군 개평마을 출신인 일두 정여창[1450~1504]과 옥계 노진[1518~1578]이 있는데, 모두 함양군 개평리 출신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전통가옥은 개평마을의 고택들에서 그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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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서 일제 강점기까지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학자 임만희의 문집. 임만희(林晩熙)[1872~1933]의 자는 백여(栢汝), 호는 종와(鍾窩)이다. 본관은 은진(恩津)이다. 아버지는 임수명(林秀明)이다. 어머니는 풍천노씨 송재(松齋) 노숙동(盧叔仝)[1403~1463]의 후손인 노한수(盧漢壽)의 딸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 갈계리[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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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평촌리 주곡마을의 풍천노씨 집안 54명이 남긴 유문을 모아 간행한 단행본. 노윤(盧昀) 등 54명이다. 1904년 10월에 후손 노정현(盧正鉉)이 족종형(族從兄)[항렬이 같은 겨레붙이 사이에 자신을 낮추어 이르는 말] 노탁현(盧卓鉉)과 함께 졸존재(拙存齋) 노분(盧昐)[1437~1478] 이하 7세까지의 유문을 수집하고 편차하여 2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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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고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한문으로 이루어진 학문 및 문학 전반을 일컫는 말. 경상남도 함양 지역의 한문학은 통일신라 시대 말기의 고운 최치원에게서 찾을 수 있다. 최치원은 당시 천령군수로 부임하여 상림(上林)을 조성하는 등 여러 치적을 남겼고, 그가 자주 오르내리던 관아 옆 누각을 후인들이 학사루(學士樓)라 하여 수많은 작품을 남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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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평촌리에 있는 옥계 노진의 신도비. 노진(盧禛)[1518~1578]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자는 자응(子膺)이고 호는 옥계(玉溪)·칙암(則庵)이며 본관은 풍천이다.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증조부는 송재(松齋) 노숙동(盧叔仝)이고 할아버지는 노분(盧昐)이다. 아버지는 참봉 노우명(盧友明)이고 어머니는 권시민(權時敏)의 딸이다.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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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풍천노씨의 대종가.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마을은 남강 상류의 덕암천과 평촌천의 합류지점, 천왕봉의 동쪽 산록 경사지에 있다. 개평마을의 중심부에 함양 일두고택이 있고, 그 동쪽에 풍천노씨 대종가가 있다. 풍천노씨 대종가는 개평길을 따라 서쪽으로 가다 보면 중앙교가 있고, 중앙교에서 서쪽으로 약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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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풍천노씨의 대종가.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마을은 남강 상류의 덕암천과 평촌천의 합류지점, 천왕봉의 동쪽 산록 경사지에 있다. 개평마을의 중심부에 함양 일두고택이 있고, 그 동쪽에 풍천노씨 대종가가 있다. 풍천노씨 대종가는 개평길을 따라 서쪽으로 가다 보면 중앙교가 있고, 중앙교에서 서쪽으로 약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