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광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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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서 개항기까지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 노광무의 시문집. 노광무(盧光懋)[1808~1893]의 자는 순가(舜嘉), 호는 구암(懼菴)·송파(松坡)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노광리(盧光履)의 문인으로, 1828년(순조 28)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수학하였다. 아버지가 병에 들자 치료하기 위하여 낙향하여서 구암서당(懼庵書堂)을 짓고 후진을 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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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의 문신. 노광두의 자는 청지(淸之), 호는 감모재(感慕齋), 본관은 풍천이다. 노광두(盧光斗)[1772~1859]의 할아버지는 노정국(盧楨國), 아버지는 호조참판에 추증된 노석규(盧錫奎)이다. 어머니는 밀양박씨 박내오(朴來吾)[1713~1785]의 딸이다. 노광두는 1772년 11월 18일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촌에서 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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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출신인 노숙동의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판각한 조선 후기 책판. 노숙동의 자는 화중(和仲)이고, 호는 송재(松齋)이며,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1427년(세종 9)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교리, 집현전 교리, 사헌부 감찰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자치통감훈의(資治通鑑訓義)』·『치평요람(治平要覽)』 등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고려사』의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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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개평마을에서 태어난 물재 노광리의 문집. 노광리(盧光履)[1775~1856]의 호는 물재(勿齋),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개평마을 송재(松齋) 노숙동(盧叔仝)[1403~1463]의 후손이다. 경서와 사기에 통달하였고, 성리학에 더욱 깊었다.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의 「성학십도」를 모방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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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유학자 노광리가 편집한 소아과 전문 의서. 노광리(盧光履)[1775~1856]의 호는 물재(勿齋), 본관은 풍천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개평마을 송재(松齋) 노숙동(盧叔仝)[1403~1463]의 후손이다. 경서와 사기에 통달하였고, 성리학에 더욱더 깊었다.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의 「성학십도(聖學十圖)」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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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에 거주한 송재 노숙동의 문집. 노숙동(盧叔仝)[1403~1463]의 자는 화중(和仲), 호는 송재(松齋)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1427년(세종 9) 문과에 급제하고 1436년 문과 중시(文科重試)에 을과로 급제한 뒤 집현전 교리, 예문관 직제학, 형조참판, 호조참판 등을 지냈다. 세조 때 청백리에 녹선(錄選)[추천되어 뽑힘]되었으며,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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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노상의 문집. 노상(盧祥)의 자는 경휴(景休), 호는 졸재(拙齋)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아버지는 영경전참봉(永慶殿參奉)을 지낸 노우영(盧友英)[1471~1551]이다. 어머니는 진양정씨(晉陽鄭氏)로, 정윤창(鄭尹昌)의 딸이다. 두계(杜溪) 서암(西巖)에 은거하며 학문에 힘썼다. ‘졸렬함으로써 뜻을 고상히 한다’[졸이상지(拙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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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교산리 함양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풍천노씨 가학십도」의 책판이다. 총 수량은 19매 38장이다. 풍천노씨가학도서(豊川盧氏家學圖序)는 총 3매 6장으로, 1847년에 홍직필(洪直弼)과 노광리(盧光履)가 지은 서문이 제5장까지로 되어 있다. 제6장은 가학십도의 의미를 4언 4구로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본문의 풍천노씨 가학십도는 총 14매 2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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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에 세거한 풍천노씨 가문에서 조상의 언행과 유훈 등을 모아 정리한 문집. 노광리(盧光履), 노광두(盧光斗)[1772~1859] 등이 조상의 언행과 유훈 등을 정리하고 편집하여 1848년에 간행하였다. 『풍천노씨가학십도(豊川盧氏家學十圖)』는 1책[37장]의 목판본으로, 전체 크기는 32.2×21.5㎝이다. 사주단변(四周單邊)으로 반곽(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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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고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한문으로 이루어진 학문 및 문학 전반을 일컫는 말. 경상남도 함양 지역의 한문학은 통일신라 시대 말기의 고운 최치원에게서 찾을 수 있다. 최치원은 당시 천령군수로 부임하여 상림(上林)을 조성하는 등 여러 치적을 남겼고, 그가 자주 오르내리던 관아 옆 누각을 후인들이 학사루(學士樓)라 하여 수많은 작품을 남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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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조선 초기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한문으로 지어진 시. 경상남도 함양 지역의 한시는 조선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앞선 통일신라 시대 최치원과 고려 시대 박충좌(朴忠佐) 등의 인물이 배출되었으나 함양과 관련한 그들의 한시는 확인되지 않는다. 여말선초의 조승숙(趙承肅)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몇몇 시구가 그의 작품으로 확인되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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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민재남의 문집. 민재남(閔在南)[1802~1873]의 초명은 수일(壽一), 자는 겸오(謙吾), 호는 회정·청천(聽天)·자소옹(自笑翁)·명곡주인(明谷主人)이다. 본관은 여흥(驪興)이다. 아버지는 감찰에 추증된 민이환(閔以瓛)이다. 어머니는 풍천노씨(豊川盧氏)로, 노능(盧稜)의 딸이다. 외가인 함양에서 태어났다. 1867년(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