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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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에 건립된 서원. 구천서원은 조선 전기 학자들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경상남도 함양 지역 유림들이 뜻을 모아 1701년에 창건하였다. 조선 전기 인물인 박맹지(朴孟智), 양관(梁灌)[1437~1507], 강한[1454~?], 표연말(表沿沫)[1449~1498], 양희(梁喜)[1515~1581], 하맹보(河孟寶)[15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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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에 건립된 서원. 구천서원은 조선 전기 학자들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경상남도 함양 지역 유림들이 뜻을 모아 1701년에 창건하였다. 조선 전기 인물인 박맹지(朴孟智), 양관(梁灌)[1437~1507], 강한[1454~?], 표연말(表沿沫)[1449~1498], 양희(梁喜)[1515~1581], 하맹보(河孟寶)[15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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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공배리에 있었던 서원. 당주서원은 1581년(선조 14)에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옥계(玉溪) 노진(盧禛)[1518~1578]을 배향하기 위하여 창건되었다. 나중에 노진 스승인 당곡(唐谷) 정희보(鄭希輔)[1488~1547]를 배향하였다. 1581년에 창건된 서원으로, 1660년(현종 원년)에 ‘당주(溏洲)’라는 편액을 받은 사액(賜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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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평촌리에 건립된 조선 후기 서원. 도곡서원은 1701년(숙종 27)에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 있는 유림들이 함양 출신 명사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하였다. 창건 초기에는 고려 후기 문신이며 학자이자 두문동 72현 가운데 한 사람인 조승숙(趙承肅)[1357~1417],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의 문신 정복주(鄭復周)[1367~?], 조선 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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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평촌리에 건립된 조선 후기 서원. 도곡서원은 1701년(숙종 27)에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 있는 유림들이 함양 출신 명사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하였다. 창건 초기에는 고려 후기 문신이며 학자이자 두문동 72현 가운데 한 사람인 조승숙(趙承肅)[1357~1417],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의 문신 정복주(鄭復周)[1367~?], 조선 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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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 출신 문신. 박맹지(朴孟智)의 호는 춘당(春塘)이며, 본관은 반남(潘南)이다. 아버지는 박안경(朴安敬)이다. 1426년(세종 8) 경상남도 함양에서 태어나 1492년(성종 23) 67세의 일기로 사망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출몰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일찍이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하였으며, 1454년(단종 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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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백연리에 있던 서원. 백연서원은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백연리를 흐르는 위천 근처 소고대 주변에 세워진 것으로 전해진다. 통일신라 시대의 대학자 최치원(崔致遠)[857~?]과 조선 전기 영남 사림의 정신 지주로 있던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1670년(현종 11)에 지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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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서 개항기까지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군 정취동 출신 허원식의 시문집. 1915년에 간행된 4권 2책의 『삼원당문집(三元堂文集)』 이본(異本)이 있다. 이 문집의 서문은 심재(深齋) 조긍섭(曺兢燮)[1873~1933]이 지었다. 허원식(許元栻)[1828~1891]의 자는 순필(舜弼), 호는 삼원당(三元堂), 본관은 하양(河陽)이다. 21세에 사미헌(四未軒) 장복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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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일원에 있는 조선 시대의 사설 유교 중등 교육기관. 『여지도서』에 의하면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는 남계서원(蘫溪書院)·당주서원(溏洲書院)·백연서원(栢淵書院)·도곡서원(道谷書院)·구천서원(龜川書院) 등 5곳이 있었고, 안의 지역에는 용문서원(龍門書院)·황암사우(黃巖祠宇)·성천서원(星川書院)·역천향사(嶧川鄕祠)·구연향사(龜淵鄕祠) 등 5곳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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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봉산리에 세워진 교육기관. 용문서원은 문헌공(文獻公) 정여창(鄭汝昌)[1450~1504]을 추모하고 제향하기 위하여 세운 서원이다. 1583년(선조 16) 정여창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된 용문서원은 1662년(현종 3)에 사액(賜額)을 받았다. 1586년(선조 19)에 조선 전기 학자 효간공(孝簡公) 임훈(林薰)[1500~1584]과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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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후학 양성에 전념한 학자. 정희보(鄭希輔)[1488~1547]의 자는 중유(仲猷), 호는 당곡(唐谷)이다. 본관은 진양(晉陽)이다. 1488년(성종 19)에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초곡리에서 출생하였다. 부인 나주박씨와 슬하에 4남 2녀를 두었다. 정희보는 조선 성종 때부터 명종 때까지 교육에 전념한 삼남[충청도·전라도·경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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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수를 지낸 문관. 조위(曺偉)[1454~1503]의 자는 태허(太虛), 호는 매계(梅溪)이다.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조경수(曺敬修), 할아버지는 조심(曺深), 아버지는 울진현령 조계문(曺繼門)이다. 어머니는 고흥유씨(高興柳氏)로, 유문(柳汶)의 딸이다. 부인은 평산신씨(平山申氏)로, 신윤범(申允範)의 딸이다. 영남 사림파의 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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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에 있는 남계서원의 문루. 함양 남계서원은 일두 정여창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지방민의 교육을 위하여 1552년에 건립되었다. 1566년에 ‘남계’라 사액되었으며 정유재란(1597) 때 소실되었다. 1603년에 나촌(羅村)에 중건되었다가 1612년에 옛 터인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로 이건되었다. 함양 남계서원은 한국에서 소수서원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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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창건된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에 있는 서원. 조선 시대 동방 5현 및 동국 18현 가운데 한 사람인 정여창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후진 양성을 위하여 건립하였다. 함양 남계서원은 1552년(명종 7)에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지어졌으며, 1566(명종 21)년에 ‘남계(灆溪)’를 사액으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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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창건된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에 있는 서원. 조선 시대 동방 5현 및 동국 18현 가운데 한 사람인 정여창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후진 양성을 위하여 건립하였다. 함양 남계서원은 1552년(명종 7)에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지어졌으며, 1566(명종 21)년에 ‘남계(灆溪)’를 사액으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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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이 함양태수로 재직 중에 조성된 상림과 현재 상림의 모습. 상림은 제방을 보호하기 위한 숲이라 하여 호안림(護岸林)이라 한다. 예전에는 대관림(大館林)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상림은 사람의 힘으로 조성된 숲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숲이다. 또한 홍수피해로부터 마을과 농경지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숲이기도 하다. 이러한 숲을 만든 조상들의 지혜는 상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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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송평리에 건립된 교육기관. 함양 송호서원은 조선 전기 단종의 폐위 소식을 접한 뒤 경상남도 거창 지역에 있는 박유산(朴儒山)[높이 712m]으로 은거한 고은(孤隱) 이지활(李智活)[1434~?]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함양 송호서원은 이지활을 추모하기 위하여 1830년(순조 30)에 건립되었다. 1832년부터는 세종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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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도촌리 대고대마을에 있는 양희의 신도비. 양희(梁喜)[1515~1581]는 문신으로, 자는 구이(懼而)이고 호는 구졸암(九拙菴)이며 본관은 남원이다. 1580년(선조 13)에 장례원(掌隷院)의 판결사(判決事)에 이르렀으며, 같은 해 동지사(冬至使)로 명나라에 갔다가 옥하(玉河)의 객관에서 병사하였다. 후에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함양의 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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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봉산리에 있는 조선 전기 정여창의 사당비. 정여창(鄭汝昌)을 기리기 위해 1583년에 당시 안의현감 이후(李侯)와 유림들이 건립하였다. 본래 용문서원 안에 세웠으나 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 사당비의 비문은 갈천(葛川) 임훈(林薰)이 짓고, 글씨는 석곡(石谷) 성팽년(成彭年)이 썼다. 함양 정여창 사당비는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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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화림동천의 수려한 자연경관에 세워진 누정과 그 속에서 조화를 추구한 선비 문화 이야기. 누정은 누각과 정자를 함께 일컫는 명칭이다. 대개 살림집과 달리 자연을 배경으로 한 남성 위주의 건축물이다. 자연과 더불어 조화로운 삶을 영위하려는 정신적 기능이 강조된 공간이다. 원래 방이 없이 마루만 있고 사방이 두루 보이도록 막힘없이 탁 트였으며, 아름다운 경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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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국주의 침략을 경계하기 위해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에 세운 비. 개항기에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를 겪은 흥선대원군은 서양 오랑캐를 경계하고자 전국 주요 도로변에 척화비를 세우도록 하였다. 임오군란과 일제강점 이후 대부분의 척화비는 철거되거나 훼손되었다. 함양 상림 근처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함양 척화비는 원형을 갖추고 있다. 경상남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