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졸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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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효우촌에서 출생한 개암 강익의 문집. 강익(姜翼)[1523~1567]의 자는 중보(仲輔), 호는 개암(介庵)·송암(松庵), 본관은 진주이다. 당곡(堂谷) 정희보(鄭希輔)[1488~1547]에게 옥계(玉溪) 노진(盧禛)[1518~1578], 청련(靑蓮) 이후백(李後白)[1520~1578], 구졸암(九拙菴) 양희(梁喜)[1515~1580] 등과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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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공배리에서 세거하고 있는 남원양씨 인물 7인의 시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판각한 목판. 『용성세고』에 수록된 7인은 양천지(梁川至)[1396~1447]를 비롯한 그 자손들이다. 양천지의 자는 장원(長源)이고 호는 성곡(省谷)으로,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그의 아들 양관(梁灌)[1437~1507]의 자는 옥지(沃之)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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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학자 양처제의 시문집. 양처제(梁處濟)[1643~1716]의 자는 계통(季通), 호는 묵재(黙齋)이다. 본관은 남원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효우촌(孝友村)에서 태어났고, 말년에는 곡성면 오지리[지금의 전라남도 곡성군 오곡면 오지리]로 이주하여 심성을 수양하였다. 증조할아버지는 구졸암(九拙菴) 양희(梁喜)[1515~1580], 할아버지는 의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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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 출신 문신. 박맹지(朴孟智)의 호는 춘당(春塘)이며, 본관은 반남(潘南)이다. 아버지는 박안경(朴安敬)이다. 1426년(세종 8) 경상남도 함양에서 태어나 1492년(성종 23) 67세의 일기로 사망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출몰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일찍이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하였으며, 1454년(단종 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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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간행된,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유학자 도희령의 문집. 도희령(都希齡)[1539~1566]의 자는 자수(子壽), 호는 양성헌(養性軒)이다. 본관은 성주(星州)이다. 아버지는 진사 도득린(都得麟)이다. 어머니는 야성송씨(冶城宋氏)로, 송희동(宋熙仝)의 딸이다. 당곡(唐谷) 정희보(鄭希輔)[1488~1547]와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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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함양 출신 문신. 양원(梁榞)[1590~1650]의 자는 군실(君實), 호는 순수(順受)·임천(任天)이다. 본관은 남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첨정을 지낸 삼기당(三祈堂) 양응곤(梁應鯤), 할아버지는 참판을 지낸 구졸암(九拙菴) 양희(梁喜)[1515~1580], 아버지는 의금부도사를 지낸 서계(西溪) 양홍주(梁弘澍)[1550~1610]이다. 어머니는 연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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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 출신 문신. 양홍주(梁弘澍)[1550~1610]의 자는 대림(大霖), 호는 서계(西溪), 본관은 남원(南原)이다. 2남 4녀를 두었다. 장남은 양황(梁榥)[1575~1597], 차남은 양원(梁榞)[1590~1650]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양관(梁灌)[1437~1507], 할아버지는 첨정(僉正) 양응곤(梁應鯤), 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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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 출신의 유학자이자 문신. 양희(梁喜)[1515~1580]는 청련(靑蓮) 이후백(李後白)[1520~1578], 옥계(玉溪) 노진(盧禛)[1518~1578]과 더불어 함양의 삼걸(三傑)[어떤 분야에서 남들보다 뛰어난 세 사람]로 칭해졌다. 1515년(중종 10)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에 있는 효우촌(孝友村)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남원(南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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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고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한문으로 이루어진 학문 및 문학 전반을 일컫는 말. 경상남도 함양 지역의 한문학은 통일신라 시대 말기의 고운 최치원에게서 찾을 수 있다. 최치원은 당시 천령군수로 부임하여 상림(上林)을 조성하는 등 여러 치적을 남겼고, 그가 자주 오르내리던 관아 옆 누각을 후인들이 학사루(學士樓)라 하여 수많은 작품을 남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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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도촌리 대고대마을에 있는 양희의 신도비. 양희(梁喜)[1515~1581]는 문신으로, 자는 구이(懼而)이고 호는 구졸암(九拙菴)이며 본관은 남원이다. 1580년(선조 13)에 장례원(掌隷院)의 판결사(判決事)에 이르렀으며, 같은 해 동지사(冬至使)로 명나라에 갔다가 옥하(玉河)의 객관에서 병사하였다. 후에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함양의 구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