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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리의 칼바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1262
한자 孝里-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남기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83년 12월 31일 - 「효리의 칼바위」, 『(우리고장 전통가꾸기)천령의 맥』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4년 12월 15일 - 「효리의 칼바위」, 『우리고장의 전설』에 수록
관련 지명 칼바위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풍수담
주요 등장 인물 수도승|부자
모티프 유형 과욕 경계|풍수지리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에 칼바위와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개설]

우명리란 명칭은 ‘소가 운다’고 하여 붙여진 것으로, 중심지는 효리이다. 조선 초기에는 천석 부자가 30호나 있었지만 마을에서 탁발승을 홀대하여 마을 앞에 있는 칼바위를 없애고 연못을 메워 지맥을 끊어버린 후에는 마을이 가난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1983년 함양군에서 발간한 『(우리고장 전통가꾸기) 천령의 맥』의 153쪽과, 1994년 함양문화원에서 간행한 『우리고장의 전설』의 262쪽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조선 초기, 우명리에는 부자들이 많이 살았다. 마을이 잘살게 된 것은 소와 연관이 있는 지형 때문이었다. 마을에는 세 곳의 우물이 있었는데 우물터들은 각각 소의 여물통, 젖이 나오는 곳, 오줌이 나오는 곳을 상징하였다. 또한 쇠뿔처럼 생긴 바위도 2개 있었다.

유교적 이념이 뻗어나가고 있던 때라 마을에서는 승려들을 푸대접하곤 하였는데, 한 수도승이 부잣집 주인에게 ‘마을 앞에 서 있는 칼바위를 없애고 큰 바위 2개 중 하나를 뽑아 마을 앞의 연못을 메우면 더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부자는 마을 사람을 동원하여 수도승이 시키는 대로 하였고, 그 결과 지맥이 끊어져서 마을이 망하게 되었다.

[모티프 분석]

「효리의 칼바위」의 주요 모티프는 ‘탁발승 박해’, ‘욕심 많은 부자’, ‘지맥 끊기’, ‘마을의 몰락’ 등이다. 사건의 원인이 ‘탁발승 박해’에 있고 이것을 괘씸하게 여긴 탁발승이 부자를 속여 마을의 지맥을 끊게 한다. 넉넉한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더 잘살 수 있다는 말에 칼바위를 없애고, 우물을 메워 지맥을 끊은 것은 부자의 욕심이 과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욕을 경계하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원래 마을의 부유함이 소를 닮은 지형 때문이었고 지형을 바꿈으로 인해서 마을의 몰락을 가져왔다. 이를 통해 풍수지리와 관련된 이야기로도 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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