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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0317
한자 許州都團練使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김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995년연표보기 - 허주도단련사 설치
폐지 시기/일시 1005년연표보기 - 허주도단련사 폐지
법령과 제도

[정의]

고려 전기에 경상남도 함양군을 관할하였던 지방관.

[제정 경위 및 목적]

995년(성종 14)에 고려 성종은 지방세력의 통제를 강화하고, 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지방제도를 개편하였다. 이때 함양군을 ‘허주(許州)’로 승격하여 허주도단련사(許州都團鍊使)를 두었다.

[관련 기록]

허주도단련사에 관한 기록은 『고려사』지리지에 “성종 14년에 승격시켜 허주도단련사가 되었다[成宗十四年陞爲許州都團練使]”라고 처음 언급되어 있다. 이후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함양읍지』의 건치연혁에 각각 기록되어 있다.

[내용]

도단련사는 당(唐)나라 안사(安史)의 난 이후, 군사적인 절도사체제를 지방제도로 실시한 것이다. 고려는 당의 지방제도를 모방하여 995년(성종 14)에 이 제도를 수용하였다.

허주도단련사를 설치한 함양군은 삼국시대부터 백제와 신라 간의 전쟁, 고려와 후백제 간의 전쟁 등이 일어났던 군사요충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또한 진주, 거창, 남원 지역 등지의 중심 지역과 연결된 교통 요지로 많은 물자가 오가는 곳이었다. 이 같은 사실을 보아 함양군은 중앙으로부터 관심을 받은 지역이었고, 함양군 중심으로 성장한 지방 세력을 통제하기 위해 허주로 승격하고 도단련사를 파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변천]

도단련사는 1005년(목종 8)에 절도사만 남기고 관찰사·단련사·자사 등을 혁파할 때 함께 폐지되었다. 10년 만에 도단련사가 폐지된 것은 왕권의 지방통치에 대한 지방세력의 반발이나, 인재선발 문제와 국가재정 문제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허주도단련사가 1005년에 폐지되어 1012년(현종 3)에 함양군으로 강등되어 합주로 이속된 점을 보면, 지방세력의 반발보다는 인재선발 문제와 국가재정 문제가 더 합당할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허주도단련사는 고려 전기 함양군의 행정, 군사적 중심지였음을 설명해 주는 데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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