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5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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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答寒岡先生 |
영어공식명칭 | Reply To Teacher Han-Gang |
이칭/별칭 | 「한강 선생에게 답하다」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대구광역시 수성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곽명재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553년 - 「답한강선생」 저자 손처눌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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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634년 - 「답한강선생」 저자 손처눌 사망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784년 - 『모당집』에 「답한강선생」 수록하여 간행 |
배경 지역 | 청호서원 - 대구광역시 수성구 청호로 250-11[황금동 79-4] |
성격 | 서간류|서 |
작가 | 손처눌 |
[정의]
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구국 활동과 강학 활동을 한 손처눌이 금호강 유람 후 정구에게 받은 편지에 답한 편지.
[개설]
「답한강선생(答寒岡先生)」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현광(張顯光)[1554~1637], 서사원(徐思遠)[1550~1615], 곽재겸(郭再謙)[1547~1615], 류요신(柳堯臣)[1550~1618] 등과 교유하였다. 학문과 효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임진왜란(壬辰倭亂)[1592]이 발발하자 대구의 지역 인사들과 공산의진군(公山義陣軍)을 조직하여 왜적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서사원과 함께 대구 지역의 강학 활동에 힘써 대구 문풍(文風)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의 청호서원(靑湖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모당집(慕堂集)』이 있다.
정구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이며, 호는 한강(寒岡)이다. 모든 방면의 학문에 정통하였고, 특히 예학(禮學)에 조예가 깊어 많은 예서(禮書)를 편찬하였다. 정구는 말년에 칠곡 사수(泗水)[현 대구광역시 북구 사수동과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일대]로 이거(移居)하여 후진양성에 힘썼으며, 대구를 포함한 인근 지역의 유학 형성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2001년 발행한 『국역 모당선생문집(國譯 慕堂先生文集)』에서는 「답한강선생」의 제목을 쉬운 우리말로 풀이하여 「한강 선생에게 답하다」라고 표기하였다.
[구성]
「답한강선생」의 내용은 3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1단에서는 지난 금호강(琴湖江)에서의 선유(船遊)에 대한 감동을 말하고, 2단에서는 지난 선유에서 혹 실수는 없었는지 공손히 질문하였다. 3단에서는 새해에 다시 찾아 뵐 계획을 말하며 편지를 마무리하였다.
[내용]
「답한강선생」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강에서 며칠 동안 선생님을 모실 수 있었던 일은 세상에 보기 드문 일이라 일생 동안의 영광이 이보다 클 수 없습니다. 그날 서호(西湖)[금호강 하류]의 유람에 선생님을 따르던 이들이 몇 명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소식을 듣고 모여든 사람들이 또한 이처럼 성대한 적이 있었겠습니까? 고금의 사람들이 같고 같지 않음을 비록 반드시 알지는 못하겠지만 여러 현인들이 존경하여 우러러보는 정성은 실로 앞선 세대의 사람들에게 양보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저는 술 마시는 것에 지쳐서 선생님과 헤어질 즈음에 예모(禮貌)를 잃은 일이 많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땀이 흐른 나머지 잇달아 얼음이 언 것처럼 오싹하여 견딜 수 없는 데 미쳤습니다. 여러모로 두렵고 부끄러운 가운데 가르침을 주는 서찰을 먼저 보내 주셔서 옷깃을 정제하고 받들어 서찰을 읽어 보니 저의 정성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정초에 만나 뵐 계획을 정하였으나 또한 기회를 손에 넣을 수 있을지는 기필할 수 없습니다. 바라옵건대, 선생님께서는 도를 보중(保重)하시어 우러르는 마음을 위로하여 주소서[河間屢日獲陪杖屨 做得曠世事 一生榮幸 此莫大焉. 不知當日西湖之遊 從先生者幾人 聞風響集者 亦有如此之盛歟. 古今人同不同 雖未必知 而羣賢景仰之誠 實不讓於前人矣. 第處訥則困於杯酌 奉別之際 想多失禮貌 迨不堪流汗之餘 繼以凝冰也. 方此悚媿 誨帖先下 整襟奉讀 無任下誠. 開初定爲拜履之計 而亦不必入手與否耳. 更乞先生爲道保重 以慰瞻仰].”
[특징]
「답한강선생」에는 정구에 대한 손처눌의 존경의 마음과 겸양의 덕이 잘 드러나 있다.
[의의와 평가]
「답한강선생」은 조선 후기 대구 지역 금호강 유람의 흔적과 대구 지역 선비들의 활발한 교류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