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41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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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銀行勞組 代理級 勞組 加入 |
영어공식명칭 | Daegu Bank Union Agency-Level Union Membership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310[수성동2가 118]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노광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83년 12월 12일 - 대구은행노조 대리급 노조 가입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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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결 시기/일시 | 1983년 12월 29일 - 대구은행노조 대리급 노조 가입 완료 |
성격 | 노동운동 |
관련 인물/단체 | 대구은행 노동조합 |
[정의]
1983년 대구은행노동조합이 추진한 4급 대리급 직원 노동조합 가입.
[개설]
1967년 11월 2일 결성된 대구은행노동조합은 대구 시내에 있는 단위 기업 중에서 최대 규모였다. 1983년 12월 말 기준으로 총 직원 수 2,290명에 조합원 수 1,797명을 보유하였다. 단위 노조로 조합원 구성이 수적으로는 많았지만, 남녀 행원과 서무원 급만으로 이루어져 있어 질적인 측면에서 다소 취약한 면이 있었다. 따라서 대구은행노동조합[위원장 김상호]은 노동조합 조직 확대를 위한 숙원 사업인 4급 대리급 직원 노조 가입을 1983년 12월 12일부터 시작하여, 1983년 12월 29일 완료하였다.
[역사적 배경]
1980년대는 사회경제적으로 큰 변화가 있었다. 1979년 10·26사태 이후 권력의 공백 현상을 이용하여 그동안 억압되었던 노동운동이 폭발적으로 분출하면서 노동쟁의 발생 건수는 1979년 105건에서 1980년에 407건으로 급증하였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등장한 제5공화국이 노동운동을 탄압하였지만, 1983년부터 유화정책에 따라 노동운동이 점차 되살아나기 시작하였다. 특히, 1980년대에는 금융자율화와 국제화의 청사진이 마련되면서 시중은행의 민영화가 시작되었다. 또한, 금융기관 설립 기준 완화로 단자회사, 상호신용금고 등 많은 금융기관이 생겼으며, 금융기관 종사자는 크게 증가하였다. 따라서 은행 내부에서는 인사 적체 현상이 일어났다.
[경과]
1980년대 대구은행의 직급 체계는 주임, 계장, 대리, 차장, 지점장 순이었다. 은행 규모가 커지면서 행원들이 늘어나자 조직도 주임, 계정, 대리, 과장, 차장, 주 지점장, 지점장으로 변경되면서 대리 직급이 상대적으로 낮아지게 되었다. 대구은행 노동조합에서는 조합의 질적 향상과 조합원의 숫자를 늘릴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당시 노조위원장과 노조집행부는 1983년 10월 11일 제16차 정기 전국 대의원 대회에서 사업계획으로 대리급 노조 가입을 확정하였다.
1983년 12월 12일 대리급 직원 개개인에 대하여 노조 가입 안내 및 협조를 내용으로 한 위원장 명의의 친서를 발송하였고, 홍보지를 발간 배부하여 은행 내의 여론을 환기시켰다. 12월 13일부터 12월 29까지 보름동안 걸쳐 위원장 김상호, 부위원장 김갑수, 총무부장 백종갑, 교육선전부장 송성윤으로 구성된 4명의 상임 간부가 분회를 매일 순회하며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결과]
대구은행노조 대리급 노조 가입은 총 대상자 262명 중 절대 다수인 258명의 호응을 얻어 1983년 12월 29일 집행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대리급 조합원 노조가입 추진을 보름 만에 완결하였다. 단체협약상 노조 가입이 유보 대상자인 인사부와 임원 부속실은 제외하였다. 2021년 현재는 노조 가입 조건이 완화되면서 4급 차장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대구은행노조의 대리급 노조 가입으로 노동조합에 대한 기존 인식에 변화를 가져왔다. 1980년대 후반 우리 사회의 정치·사회·경제 그리고 가치관의 변화에 큰 영향을 끼치면서 지역공동체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