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10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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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求智面 修理二里 昌寧曺氏 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수리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재영 |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수리리에 있는 창녕 조씨 집성촌.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수리2리의 창녕 조씨(昌寧曺氏) 집성촌은 지리적으로도 경상남도 창녕군과 가깝고, 대니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에는 창녕조씨 문중에서 현조(顯祖)들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기념비적 건물 두 채가 있다. 하나는 처사 조상천(曺尙天)의 추모 재사 첨경재(瞻敬齋)이고, 다른 하나는 통정대부(通政大夫)를 지낸 입향조 조윤암(曺胤岩)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재실 이사재(履泗齋)이다.
마을 남쪽에 낙동강이 흐르고 있어 비교적 넓은 들이 형성된 수리리의 지명 유래는 현재까지 알려진 바가 없지만, 수리리의 자연 마을 중 하나인 사동 마을이 현재 집성촌이 위치한 곳인데, 예전에 사찰이 있었다고 하여 사동(寺洞)이라 불리었다고 한다.
창녕인 통정대부(通政大夫) 조윤암(曺胤岩)이 임진왜란을 피해 창녕에서 이곳으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집성촌이 되었다. 35가구의 작은 마을이나 30여 가구가 창녕조씨들이다.
마을의 동쪽으로부터 북쪽, 서쪽에 이르기까지 대니산[407.3m]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고, 마을 앞은 낙동강의 충적 평야인 넓은 들판이 형성되어 있어 전형적인 자연적 배산임수형 마을이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수리리 사동 마을 회관 뒤에 있는 첨경재는 원래 도동에 있던 천석꾼의 살림집 몸채를 뜯어와 80여 년 전에 재실로 지은 것이라 한다. 재실 앞에 있던 대문간채는 마을 회관 건립 시에 철거되었다. 규모는 방 두 칸, 대청 두 칸, 방 한 칸이 잇닿은 다섯 칸 반이고, 가구는 전퇴 삼량가에 팔작 기와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