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1187
한자 祈雨祭
영어공식명칭 Ritual for Rain
이칭/별칭 산신 기우제,용신 기우제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현대/현대
집필자 한양하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에 가뭄이 지속되면 비가 오기를 기원하며 지냈던 제사 의식.

[연원 및 변천]

가뭄이 들었을 때 비를 내리게 하기 위해 올리는 다양한 제사 의식을 기우제라 했다. 삼국 시대부터 기우제가 행해졌음을 『삼국사기』의 기록을 통해 알 수 있으며, 이는 조선 시대에도 계속되었다. 국왕이나 조정 주도로 진행되기도 하였으나, 지방이나 민간 차원에서도 시행되었다. 왕실의 시조묘, 종묘, 명산대천, 부처, 용신(龍神) 등에게 제를 올려 비가 오기를 기원하였다.

경상남도 함양군에서는 가뭄이 들면 비가 오기를 기원하며 산신에게 비는 산신 기우제, 강에서 지내는 용신 기우제를 지냈다. 김한규 씨[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한남마을, 당시 85세, 전 노인회장]는 오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함양에 관개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여름에 가뭄이 들면 휴천면에서는 면민 대표들이 날짜를 협의하여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절차]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에서 남서 간 4㎞ 지점에 높이 556m의 천령봉이 있는데, 천령봉 정상에는 언제 구축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제단이 마련되어 제를 지낸 흔적이 있다. 다만 서상면 도천리, 서하면 반정마을다곡리, 백전면 운산리, 안의면 죽당마을과 교동마을 등에서 산신 기우제를 지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어, 산신 기우제를 지냈던 곳으로 추측된다.

『함양군사』에는 당시 절차를 알 수 있는 구체적인 기록이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에 오랫동안 가뭄이 들었던 때, 함양의 진산인 함양 북쪽에 있는 623m의 진산봉[백암산]에 어떤 사람을 암매장하였기에 가뭄이 계속되니 이를 파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그리하여 암장(暗葬)묘[남몰래 시신을 파묻은 묘] 파기에 자발적으로 주민들이 나섰다는 것이다. 이 기록에는 절차에 대해서도 적고 있는데, 당시 이를 주도한 장정들이 마을 대표들에게 제물비를 거두어 멧밥, 삼탕, 과일, 술, 고기 등을 장만하였다. 묘파기에 참가한 사람들은 괭이와 삽을 가져갔으며, 하산 시 비가 오더라도 우비를 갖지 못하게 하였다. 제관과 축관은 주도한 장정 중에서 정하였다. 암장묘를 파는 산의 봉우리에서는 가축의 생피를 근처 바위에 뿌리고 제물을 차려 제를 지낸 다음 하산하였다 한다. 이와 같은 형태로 경상남도 함양군에서는 함양 서쪽에 있는 백운산에서도 산신 기우제를 지냈다. 또한 지리산 천왕봉에도 산신 기우제를 지내왔다. 이는 조선 성종 때 점필재(佔畢齋) 김종직이 함양군수로 있던 시절 지리산 천왕봉에서 기우제를 지냈는데, 기우제를 지내고 내려오니 비가 내려 군수는 그 비를 맞고 기뻐하며 하산하였다는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용신 기우제를 지내는 지역도 있었다. 병곡면 송정마을, 마천면 추성마을, 서하면 반정마을 등 흐르는 임천강과 임천강 천변 지역이나 내를 끼고 생활하는 지역에서는 마을이 합동으로 가장 깨끗하고 정성 있는 노년자를 제관으로 하여 대낮에 의식을 행하였다. 제는 유교식으로 이루어졌다 한다. 용신 기우제는 ‘더러운 짐승의 피와 머리를 씻어 내리도록 용으로 하여금 큰 물이 흐르게 하라’는 기원을 담았다. 그 때문에 제를 지낼 때 개 또는 돼지, 닭의 목의 잘라 그 피를 바위에 뿌리고, 머리는 오쟁이[짚을 엮어 만든 작은 바구니류]에 묶어서 돌을 달아 강의 깊은 곳에 던졌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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