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1181
한자 咸陽許三乧古宅
영어공식명칭 House of Heo Sam-dul in Hamyang
이칭/별칭 윤씨고가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허삼둘길 11-7[금천리 196-2]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권순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18년연표보기 - 함양 허삼둘 고택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1984년 12월 24일연표보기 - 함양 허삼둘 고택, 국가민속문화재 제207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함양 허삼둘 고택, 국가민속문화재로 재지정
현 소재지 함양 허삼둘 고택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허삼둘길 11-7[금천리 196-2]지도보기
성격 전통가옥
양식 한식 목조와가
정면 칸수 7칸[안채]|7칸[사랑채]
측면 칸수 3칸[안채]|1.5칸[사랑채]
문화재 지정 번호 국가민속문화재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금천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에 건립한 주택.

[위치]

남강 상류부 우안의 활주사면부에 있다. 가옥의 배면에는 낮은 침식성 저구릉인 무어산 능선이 있고 앞에는 넓은 평지가 조성되어 있다. 안의초등학교의 동쪽에 있는 안의선교본당의 동편에 자리 잡고 있다. 안의교를 건너 광풍로를 따라 서쪽으로 약 110m를 가면 금성길이 있는데 금성길을 따라 약 197m를 더 가면 사거리가 있다. 이 사거리에서 동쪽길 즉 허삼둘길을 따라 약 86m를 가면 현재의 출입구에 이른다.

[변천]

윤대흥이 진주 갑부 허씨 집안에 장가를 들어 부인인 허삼둘과 함께 1918년에 건립한 주택이라 전한다. 상량문에 ‘세재무오년구월상량(歲在戊午年九月上樑)’이라 기록되어 있으며, 1915년에 완성된 지적원도에서는 186번지는 지목이 밭[田]으로 되어 있어 아직 가옥이 건립되기 전인 것을 알 수 있다. 안채의 평면이 특이한데, 부인인 허삼둘의 건축 의도가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형태]

평평한 대지에 남동향 하고 있으며, 안마당과 사랑마당이 축선상에 배치되어 있다. 안마당은 북동쪽에 ‘ㄱ’자형 안채가 남쪽에는 ‘T’자형의 사랑채가 그리고 서쪽에는 안행랑채와 곳간채가 튼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안채는 ‘ㄱ’자형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평면은 ‘ㄱ’자의 절곡부에 부엌을 둔 독특한 배치이다.

서쪽은 마루방, 온돌방, 마루 1칸,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 2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남쪽은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 1칸, 마루 2칸,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 1칸으로 되어 있다. 세 겹집으로 하나의 지붕 아래 부엌을 중심으로 두 공간을 분리한 점이 주목된다. 두 공간에는 툇마루와 가변형 마루를 설치하였다. 부엌을 넓게 사용하기 위해 기동의 배치 방법과 가구법은 이 집의 백미이다. 그리고 부엌 배면의 벽체도 직각으로 구성하지 않고 사선으로 처리한 점도 특이하다. 안채의 공포양식은 정면 툇마루 부분에만 소로로 장식하였고 온돌방 부분에는 장여로 간단하게 장식하였다. 지붕은 한식기와로 마감하였는데 막새는 사용하지 않았다.

사랑채는 ‘T’자형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평면은 서쪽부터 툇마루와 부엌 1칸,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 2칸, 마루 2칸, 누마루 1칸, 온돌방 1칸,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 1칸, 툇마루가와 부엌 1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누마루가 돌출되어 설치되어 있고, 삼분합 들문과 계자각 난간 그리고 활주까지 세워 장식을 하였다. 대청의 배면에는 흙벽을 설치하여 안채와의 시선을 차단하였다. 공포양식은 안채처럼 툇마루 부분에만 소로로 마감되어 있지만 온돌방은 장여수장으로 마감되어 있다. 지붕은 한식기와로 마감하였다.

대문채는 사랑마당의 동편에 있는데, 소슬대문이며 사랑채와 대문채 사이에는 바깥행랑채가 1동 있다.

[현황]

함양 허삼둘 고택이 위치한 곳은 안의현의 치소로, 서쪽의 185번지는 객사 터로 추정된다. 1984년 12월 24일 국가민속문화재 제207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민속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지정된 이후 지속적인 정비와 관리를 통해 현재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시대의 사대부가의 형태를 유지는 하고 있으면서, 여성의 편의를 고려한 가옥 배치와 평면을 통해 일제 강점기의 주택 모습을 알 수 있는 사례로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