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악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1084
한자 金壽岳
영어공식명칭 Gim Suak
이칭/별칭 김순녀,춘당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한양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26년연표보기 - 김수악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46년 - 김수악, ‘논개비 건립’ 모금을 위한 창극 「대춘향전」출연
활동 시기/일시 1949년 - 김수악, 제1회 진주 개천예술제 출연
활동 시기/일시 1967년 - 김수악, 「진주검무」[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초대 예능보유자 지정
활동 시기/일시 1973년 - 김수악, 진주민속예술원 설립
활동 시기/일시 1997년 - 김수악, 「진주교방굿거리춤」[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21호] 지정
몰년 시기/일시 2009년연표보기 - 김수악 사망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67년 -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 예능보유자
출생지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지도보기
묘소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 송림리 481-1
성격 예술인|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
성별
대표 경력 중요무형문화재 12호 「진주검무」 예능보유자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출신 전통무용가.

[개설]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출신 전통무용가로, 진주검무와 진주교방굿거리춤 전승자이다.

[가계]

김수악(金壽岳)[1926~2009]의 본명은 김순녀(金順女), 호는 춘당(春堂)이다. 1926년에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서 국악 애호가 김종옥의 딸로 태어났다. 김수악의 작은 아버지 김종기는 진주 권번(券番)에서 가야금 선생이었다.

[활동 사항]

김수악은 9세 때 진주 권번에서 김옥민에게 춤을 배웠다. 이후 소고춤, 구음(口音)[구강으로만 기류를 통하게 하여서 내는 소리], 판소리, 기악을 배웠다. 최완자(崔完子)[1884~1969]에게서는 입춤, 굿거리, 검무 등을 배웠다. 김수악은 일제강점기 후반의 진주 권번과 교방예술(敎坊藝術)[기녀(妓女) 중심의 노래와 춤을 관장하던 기관인 진주교방을 중심으로 형성된 예술]을 보고 익혔다.

해방 후 결혼으로 잠시 활동을 중단했다가 1946년에 ‘논개비 건립’ 모금을 위한 창극 「대춘향전」으로 다시 무대에 섰고, 1949년에는 제1회 진주 개천예술제에도 출연하였다. 1967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의 초대 예능보유자가 되었다. 1969년에는 목포 유달국악원, 1971년에는 광주 호남국악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73년에는 진주민속예술원을 설립했으며, 경상대학교·진주시립국악원·진주교육대학교 등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쳤다. 1983년에 열린 한국명무전에서는 일찍이 최완자와 김녹주(金綠珠)[1896~1923]에게 배운 춤을 재구성하여 「진주교방굿거리춤」을 추었다. 「진주교방굿거리춤」은 1997년에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되었다. 개천예술제에서 춘 「논개살풀이춤」도 교방춤에 남해안별신굿의 춤가락을 결합시킨 작품이다.

[저술 및 작품]

「진주검무」, 「진주교방굿거리춤」, 「논개살풀이춤」 등이 있다.

[묘소]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 송림리 481-1에 위치한다.

[상훈과 추모]

김수악은 1981년 대한민국사회교육문화상 금상, 1985년 진주시문화상, 1995년 제34회 경상남도 문화상을 각각 수상하였다.

2010년에는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1주기 추모공연이 열렸으며, 2018년 4월 28일에는 9주기를 맞아 제자들이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 송림리 481-1에서 춘당 김수악선생 연혁비 건립을 위한 제막식과 기념공연을 개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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