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0786
한자 善修
영어공식명칭 Seonsu
이칭/별칭 부휴,홍각대사,등계존자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동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43년연표보기 - 선수 출생
출가|서품 시기/일시 1559년 - 선수, 지리산 신명에게 출가
활동 시기/일시 1609년 - 선수, 전라남도 순천 조계산 송광사에 주석
활동 시기/일시 1614년 - 선수, 경상남도 하동 칠불암으로 거처 옮김
몰년 시기/일시 1615년연표보기 - 선수 사망
출생지 선수 출생지 - 전라북도 남원 오수
활동지 송광사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안길 100[신평리 12]
활동지 칠불암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범왕길 528[범왕리 1605]
성격 승려
성별

[정의]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지리산 권역에서 활동한 선승.

[개설]

선수(善修)[1543~1615]는 속성이 김씨이고, 호는 부휴(浮休)이다. 전라북도 남원 오수[지금의 임실군 오수면] 출신이다.

아버지는 적산(積山)이며, 어머니는 이씨이다. 어머니가 ‘만일 아들을 낳으면 출가시키겠다’는 서원(誓願)[신불(神佛)이나 자기 마음속에 맹세하여 소원을 세우거나 그러한 소원]을 세우고 신승(神僧)에게 원주(圓珠)[둥근 구슬]를 받아 삼키는 꿈을 꾸고 난 뒤 선수를 출산하였다.

[활동 사항]

선수는 12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17세에 지리산(智異山)에 들어가 신명(信明)의 제자가 되어 사미계를 받았다. 나중에 벽송사의 2대 조사 부용(芙蓉) 영관(靈觀)[1485~1572]의 지도로 심요(心要)[마음의 가장 중요한 정수]를 얻었다. 이뿐만 아니라 노수신(盧守愼)[1515~1590] 등 유학자들과도 널리 교유하여 유가의 외전(外典)[불경 이외의 다른 서적]에도 두루 능통하였다. 또 동진 왕희지(王羲之)[307~365]의 필법을 익혀 사명당(四溟堂) 유정(惟政)[1544~1610]과 함께 당시 서예로도 명성을 얻었다.

임진왜란 때 덕유산의 초암, 가야산의 해인사, 무주 구천동 등지에서 수행을 하였다. 임진왜란 후인 1609년(광해 1)에 병란으로 피폐해진 조계산 송광사에서 주석(駐錫)[불교 선종에서 승려가 입산하여 안주함]할 것을 청하자 400여 명의 제자들과 가서 당우를 중수하였다. 1612년 지리산에 있다가 무고를 당하여 제자 각성(覺性)[1575~1660]과 투옥되었지만 결국 무죄로 판명되었다. 선수는 광해군을 위하여 설법을 하였고, 자란방포(紫襴方袍)[승려가 입는 네모난 자주색 가사] 등 많은 예물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선수는 서산대사(西山大師) 휴정(休靜)[1520~1604]의 사제로, 정통 격외선(格外禪)[행하는 말이나 문자로 논할 수 있는 격식을 초월한 불교 선법]을 계승하였다. 휴정은 “부휴야말로 이 혼란한 시대에 선맥을 이을 다시없는 사람이다.”라고 극찬하였다. 임진왜란이 종식되면서 조선불교계에 선교 쟁론이 발생하자 부휴는 분란에 휩싸인 조선불교계를 임제선(臨濟禪)[중국 불교 선종 5가(家)의 한 종파인 임제종(臨濟宗)에서 하는 선법(禪法)] 중심으로 정비하는 데 일조하였다.

선수의 문하에는 700여 명이 수행을 하였다. 그 가운데에서도 벽암(碧巖) 각성, 뇌정(雷靜) 응묵(應黙), 환적(幻寂) 인문(印文), 포허(抱虛) 담수(淡水), 대가(待價) 희옥(希玉), 송계(松溪) 성현(聖賢), 고한(孤閑) 희언(熙彦)[1561~1647] 등 7명의 활동이 가장 두드러졌다. 1614년에 조계산(曺溪山)[높이 884m] 송광사(松廣山)에서 경상남도 하동의 칠불암(七佛庵)으로 거처를 옮겼으며, 이듬해인 1615년 11월에 입적(入寂)[승려가 죽었음을 이르는 말]하였다. 세속 나이 72세, 법랍 57세였다.

[사상과 저술]

저서로는 5권 1책의 『부휴당대사집』이 있다. 『부휴당대사집』은 부휴대사가 사명당을 포함하여 당시 고승, 유생들과 교유하던 글들을 수록하고 있다. 문집은 선수의 제자 각성이 편집한 5권 1책의 목판본이다. 초간본은 1619년 태안사, 중간본은 1920년 화엄사에서 각각 간행하였다.

[묘소]

화장하여 얻은 사리는 송광사, 백장사(白丈寺), 칠불암, 해인사 국일암 등에 나누어 안치하였다. 칠불암의 부도는 장구형의 팔각형 기대 위에 안치된 석종형으로, ‘부휴대사선수(浮休大師善修)’란 글귀가 선명하다.

[상훈과 추모]

1620년에 광해군은 ‘부휴당 부종수교변지무애 추가홍각대사선수등계존자(浮休堂扶宗樹敎辯智無礙追加弘覺大師善修登階尊者)’라는 시호를 내렸다. 현재 해인사에는 ‘종교대선사 부휴당 선수지진영(宗敎大禪師浮休堂善修之眞影)’이 전하고 있다. 1920년에 후손인 백곡(白谷) 처능(處能)[1617~1780]이 찬술한 선수의 사적비는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에 속한 송광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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