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0750
한자 慧諶
영어공식명칭 Hyesim
이칭/별칭 영을,무의자,최식,진각국사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신은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178년연표보기 - 혜심 출생
출가|서품 시기/일시 1201년 - 혜심, 사마시에 급제
출가|서품 시기/일시 1202년 - 혜심, 어머니가 사망하자 조계산 보조국사에게 출가
활동 시기/일시 1212년 - 혜심, 『심요』 편찬
활동 시기/일시 1219년 - 혜심, 단속사 주지 맡음
몰년 시기/일시 1234년 6월 26일연표보기 - 혜심 사망
출생지 혜심 출생지 - 전라남도 나주군 화순현
학교|수학지 금대암 -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가흥리 지도보기
활동지 송광사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활동지 단속사 -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운리
성격 선승
성별
대표 경력 수선사 사주|단속사 주지

[정의]

고려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에 있는 금대암에 머물렀던 선승.

[개설]

혜심(慧諶)[1178~1234]은 고려 후기의 선승이자 보조국사 지눌(知訥)[1158~1210]의 제자로서 수선사(修禪社) 2대 사주(社主)가 되었으며, 단속사(斷俗寺) 주지를 지냈다. 자는 영을(永乙), 자호는 무의자(無衣子), 속명은 최식(崔寔)진각국사(眞覺國師) 이다.

[활동 사항]

전라남도 나주군 화순현(和順縣)[지금의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향공진사(鄕貢進士) 최완(崔琬), 어머니는 배씨(裵氏)이다. 혜심은 아버지가 타계한 뒤 출가하려 하였으나 어머니가 유학에 힘쓸 것을 주장하며 출가를 반대했다. 1201년(신종 4) 사마시 급제하여 태학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어머니가 사망하자 수선사의 지눌에게 가서 모친의 재(齋)를 지낸 후 지눌에게 출가하였다.

1208년(희종 4)에 보조국사 지눌혜심에게 사석(師席), 즉 사주를 계승시키고 자신은 안규봉(安圭峯)으로 물러가려 하자 혜심은 끝내 사양한 뒤 지리산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추었다. 혜심이 수년 동안 은거한 곳은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지리산 자락의 금대암(金臺庵)으로 추정된다. 1210년(희종 6)에 지눌이 입적하자 혜심은 수선사로 돌아가 지눌의 뒤를 이었고, 이때부터 문도들이 혜심을 더욱 공경하였다.

1212년 강종(康宗)이 즉위한 뒤 수선사를 증축하면서 자주 중사(中使)를 보내어 공사를 독려하였다. 또 사자를 보내어 만수가사(滿繡袈裟)[산천, 초목, 인물, 글자 등을 금실로 가득 수놓은 가사]와 마납(磨衲)[비단으로 짠 법복] 각 한 벌, 차와 향, 보병(寶甁) 등을 내려주면서 불법을 구하자 혜심은 『심요』를 지어 올렸다. 당시 무인집권자 최우(崔瑀)[?~1249]는 두 아들 만종(萬宗)과 최항(崔沆)인 만전(萬全)[?~1257]을 혜심에게 출가시켰다. 고종(高宗)은 즉위 후 혜심에게 대선사를 제수(除授)하고, 1219년(고종 6)에 조서를 내려 단속사 주지로 삼았다. 혜심은 단속사 주지로 있으면서 수선사를 상주처로 삼았다. 혜심은 1234년(고종 21) 6월 26일 향년 57세, 승랍(僧臘) 32년으로 입적하였다.

혜심의 문인으로는 몽여(夢如)[?~1252], 진훈(眞訓), 각운(覺雲), 마곡(麻谷) 등이 있다. 부도는 광원암(廣遠庵) 북쪽에 있다. 이규보(李奎報)[1168~1241]가 찬한 진각국사비(眞覺國師碑)는 전라남도 강진군 월남산 월남사(月南寺)에 세워졌으나 현재는 잔편만 전한다.

[사상과 저술]

저서로는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 30권, 『심요(心要)』, 『조계진각국사어록(曹溪眞覺國師語錄)』, 『구자무불성화간병론(狗子無佛性話揀病論)』, 『무의자시집(無衣子詩集)』2권, 『금강경찬(金剛經贊)』, 『선문강요(禪門綱要)』가 있다.

[묘소]

전라남도 송광사(松廣寺) 광원암 뒤쪽에 원소지탑(圓炤之塔)이 있다.

[상훈과 추모]

1235년(고려 고종 22) 여름에 광원사(廣原寺)의 북쪽에다 장사를 지냈다. 입적한 뒤 진각국사라는 시호를 받았다. 고종은 부도(浮圖)를 세워 원소지탑(圓炤之塔)이라고 사액(賜額)[왕조 시대에 임금이 사당, 서원, 누문 등에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을 내리던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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