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미헌전선생실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0672
한자 採薇軒全先生實記
영어공식명칭 Chaemiheonsilgi
이칭/별칭 『채미헌선생실기』,『채미헌실기』,『채미헌집』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시대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공광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866년연표보기 - 『채미헌전선생실기』 간행
소장처 국립중앙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반포동 산60-1]
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운중동 490-8]
간행처 서산서원 -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지도보기
성격 문집
저자 전오륜
편자 전정수|김병우
간행자 전정수|전병렬|전재황
권책 2권 1책
행자 8행 18자
규격 32.0×19.5㎝
어미 내향상삼엽하이엽화문어미
권수제 채미헌전선생실기
판심제 채미헌전선생실기

[정의]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간행한 전오륜의 실기.

[저자]

전오륜(全五倫)의 자는 중지(仲至), 호는 채미헌(採薇軒)이다. 본관은 정선(旌善)이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될 때 고려 왕조에 대한 절개를 지켜 두문동으로 들어간 72현 가운데 한 명이다. 1357년 국자감 생원, 이듬해 음직(蔭職)[과거에 의하지 않고 부모와 조부모의 공으로 하는 벼슬]으로 봉선고판관(奉先庫判官)이 되었다. 1360년 과거 문과에 급제한 뒤 합천 군수, 진주 목사를 지냈다. 고려가 망하자 조선 태조에 의하여 본향안치(本鄕安置)의 처벌을 받은 후 서운산(瑞雲山)[강원도 정선시 소재]에 은거하였다. 두문동서원과 서산서원에 제향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후손 전정수(全廷壽)가 전오륜의 시문과 가장(家狀)[한 집안 어른의 일생 행적을 기록한 글]을 모아 간행하였다. 이후 전병렬(全昺烈)과 전재황(全在璜)이 전적(典籍)[일정한 목적, 내용, 체재에 맞추어 사상, 감정, 지식 따위를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하여서 적거나 인쇄하여서 묶어 놓은 책]을 두루 살핀 뒤 전오륜과 관련한 사실을 더하여 간행하였다. 이것을 다시 전병우(全秉佑), 전재익(全在翼), 전석윤(全錫允) 등이 다른 여러 책에서 찾아낸 자료를 더하여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채미헌전선생실기(採薇軒全先生實記)』는 2권 1책의 목활자본으로, 전체 크기는 32.0×19.5㎝이다. 좌우단변(左右單邊)으로 반곽(半郭)은 19.9×14.5㎝이며, 행마다 경계가 있다. 8행 18자이고, 주(註)는 쌍행(雙行)이며, 내향상삼엽하이엽화문어미이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7편의 서문과 1편의 발문이 있다. 서문은 이경재(李景在), 정문승(鄭文升), 정환익(鄭煥翼), 한치조(韓致肇), 박헌양(朴憲陽), 김양순(金陽淳), 서유여(徐有畬) 등이 지었다. 발문은 오달선(吳達善)이 썼다. 권은 상과 하 2권으로 구분되어 있다. 권 상에는 서문과 본전이 있다. 권 하에는 전오륜의 시 2수, 여러 사람으로부터 받은 시,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이 지어 준 「자설(字說)」 등과 야사에 기록된 전오륜의 기사를 수록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채미헌전선생실기』는 전오륜의 행적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전오륜은 경상남도 함양의 서산서원에 제향되었고, 서산서원에서 전오륜의 실기를 다시 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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