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초유고』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0604
한자 白草遺稿
영어공식명칭 Baekchoyugo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영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894연표보기 - 『백초유고』 간행
소장처 국립중앙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반포동 산60-1]
성격 시문집
저자 노형하
편자 노창원|노주현
간행자 노창원|노주현
권책 2권 1책
행자 10행 24자
규격 31.0×21.7㎝[전체 크기]|21.2×16.8㎝[반곽]
어미 내향흑어미
권수제 백초유고
판심제 백초유고

[정의]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에서 태어난 백초 노형하의 시문집.

[저자]

노형하(盧亨夏)[1620~1654]의 자는 장경(長卿), 호는 백초(白草)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문효공(文孝公) 옥계(玉溪) 노진(盧禛)[1518~1578]이다. 7세 때 부친상을 당하고 어머니의 고향 전라북도 남원으로 이거하였다. 1646년(인조 24)에 진사에 합격하고 1648년(인조 26)에 문과 식년시 을과에 합격하여 승문원 정자(承文院丁字)가 되었다. 이어서 시강원 설서(侍講院設書), 승정원 주서(承政院注書), 병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노형하의 시문이 병화로 소실되고 전하는 것이 거의 없었다. 이에 집안의 벽장과 여러 사람들의 입을 통하여 전해지던 고인의 문장을 수집하고 손자인 재야당(在野堂) 노식(盧湜)[1653~1715]의 글과 합본하여 1책으로 간행하였다. 1894년 후손 노병인(盧秉仁)이 서문을 썼으며, 1895년 후손 노창원(盧昌源)과 노주현(盧冑鉉)은 발문도 쓰고 간행도 주도하였다.

[형태/서지]

『백초유고』는 2권 1책의 목활자본이다. 사주쌍변(四周單邊)에 전체 크기는 31.0×21.7㎝이고, 반곽(半廓)은 21.2×16.8㎝이다. 계선(界線)이 있고, 10행 24자이다. 주(注)는 쌍행(雙行)이며, 내향흑어미(內向黑魚尾)가 있다.

[구성/내용]

『백초유고』의 권1에는 시, 서(書) 2편, 잡저(雜著)에 책문(策文) 1편이 있다. 권2에는 부록으로 만사(輓詞), 애사(哀詞), 제문, 가장(家狀), 행장(行狀), 묘갈명, 유사(遺事)가 있다. 시에는 황류동(黃流洞)을 유람하고 지은 시, 황령암(黃嶺菴) 연구시(聯句詩), 문루(門樓) 연구시, 백무당(百巫堂) 연구시가 있다. 같은 제목 하에 같은 장소에서 지은 사람들의 시를 부(附)로 수록하여 작가의 교유 관계를 알 수 있다. 시는 주로 한 지역을 유람하고 지은 시가 주를 이룬다. 책문은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에 관한 것을 왕과 신하의 문답법(問答法) 형식으로 표현하였다. 가장은 후손 노동익(盧東益), 행장은 이재(李縡)가 각각 지었다.

[의의와 평가]

『백초유고』는 함양의 개평마을에 세거한 풍천노씨가 남원으로 이거하게 된 과정을 알 수 있으며, 풍천노씨 집안과의 영호남 교류 양상에 대한 연구자료로써의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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