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족당선생문집』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0586
한자 知足堂先生文集
영어공식명칭 Jijokdangseonsaengmunjip
이칭/별칭 『지족당선생집』,『지족당문집』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영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915년연표보기 - 『지족당선생문집』 간행
소장처 국립중앙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반포동 산60-1]
성격 시문집
저자 박명부
편자 박경환
간행자 박경환
권책 8권 3책
행자 10행 20자
규격 31.4×21.5㎝[전체 크기]|20.7×16.6㎝[반곽]
어미 상삼엽화문어미
권수제 지족당선생문집
판심제 지족당선생문집

[정의]

조선 시대 경상남도 함양군에 거주한 박명부의 시문집.

[저자]

박명부(朴明榑)[1571~1639]의 자는 여승(汝昇), 호는 지족당(知足堂)이다. 본관은 밀양이다. 경상남도 함양에서 살았다. 정구(鄭逑)[1543~1620] 문인으로, 예설(禮說)[예절에 관한 학설]에 밝았다. 1590년 문과에 급제하여 교서관부정자가 되었다. 1593년 박사에 제수되었고, 호조좌랑·사헌부지평·합천군수 등을 지냈다. 1614년 영창대군이 죽음을 당하고 인목대비가 유폐되자 부당함을 직간(直諫)[잘못된 일에 대하여 직접 말함]하다가 관직을 삭탈(削奪)[벼슬과 품계를 빼앗고 벼슬아치 명부에서 이름을 지움]당했다. 병자호란 후 강화가 맺어지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내려와 은거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후손 박경환(朴景煥)이 편집하여 정재교(鄭在敎)[1852~?]에게 발문을 부탁하고 조종필(趙鍾弼)의 서문을 받아 1915년에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8권[본집 5권, 부록 3권] 3책의 목활자본이다. 전체 크기는 31.4×21.5㎝, 반곽(半郭)은 20.7×16.6㎝이다. 사주쌍변(四周雙邊)에 10행 20자이며, 주(註)는 쌍행(雙行)이다. 상삼엽화문어미(上三葉花紋魚尾)가 있다. 판심제는 ‘지족당선생문집(知足堂先生文集)’, 표제는 ‘지족당선생집(知足堂先生集)’이다.

[구성/내용]

권1에는 부(賦)와 시(詩)가 있다. 권2에는 교서, 소(疏), 차자(箚子)[조선 시대에 일정한 격식을 갖추지 않고 사실만을 간략하게 적어 올리던 상소문]가 있다. 권3에는 계사(啓辭)[죄가 되는지 안 되는지, 큰지 작은지를 논함에 관하여 임금에게 올리던 글], 장계(狀啓)[왕명을 받고 지방에 나가 있는 신하가 자기 관하(管下)의 중요한 일을 왕에게 보고하던 일 또는 왕에게 보고하기 위하여 작성한 문서], 전문(箋文)[임금이나 왕후, 세자에게 올리던 글], 서(書)가 있다. 권4에는 잡저가 있다. 권5에는 서(序), 기(記), 발(跋), 명(銘), 찬(贊), 축문, 제문, 전(傳), 비갈이 있다. 부록 권6에는 연보·교유(敎諭)·사제문(賜祭文), 부록 권7에는 증시(贈詩)·증서(贈序)·만사(輓詞)·제문이 각각 있다. 부록 권8에는 행장, 묘지명, 신도비명, 「화천서원 상정축문(花川書院常亭祝文)」, 「농월정(弄月亭) 중건기」, 「농월정 중건 양송(樑頌)」, 발(跋)이 있다. 소(疏)의 「울산민폐소(蔚山民弊疏)」와 「강릉민폐소(江陵民弊疏)」는 여러 가지 폐단의 개혁을 요구한 것이며, 잡저의 「황석산성 실적(實蹟)」에는 정유재란 황석산성 전투가 기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다양한 문체로 된 문학 작품이 많아 17세기 경상남도 함양 지역 유림의 문학 역량을 알 수 있는 문집이다. 또 「황석산성 실적」은 정유재란 당시 황석산성 전투를 자세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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