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0501
한자 咸陽盧參判宅古家
영어공식명칭 Roh’s old house in Hamyang Gaepypng-ri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길 34-2[개평리 307-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권순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45년연표보기 - 함양 노참판댁 고가, 안채 건립
건립 시기/일시 1823년 - 함양 노참판댁 고가, 사랑채 건립
건립 시기/일시 1830년 - 함양 노참판댁 고가, 사당 건립
건립 시기/일시 1830년 - 함양 노참판댁 고가, 가묘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920년 - 함양 노참판댁 고가, 사랑채 중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945년 - 함양 노참판댁 고가, 안채 중수
문화재 지정 일시 2004년 10월 21일연표보기 - 함양 노참판댁 고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60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함양 노참판댁 고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
현 소재지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길 34-2[개평리 307-1]지도보기
성격 건물
양식 한식목조와가
정면 칸수 4칸[안채]|4칸[사랑채]
측면 칸수 2칸[안채]|1.5칸[사랑채]
소유자 노철환
관리자 노철환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고택.

[위치]

개평마을남강 상류의 덕암천과 평촌천의 합류지점, 천왕봉의 동쪽 산록 경사지에 있다. 노참판댁 고가는 개평마을의 동쪽 지역, 풍천노씨 대종가의 남동쪽에 위치한다. 개평길을 따라 서쪽으로 가다가 삭막교에서 서쪽으로 약 85m 떨어진 곳 우측에 함양 노참판댁 고가가 있다.

[변천]

호조참판에 추증된 노석규(盧錫奎)는 1746년에 이곳으로 이거하였다. 노석규의 아들 감모재(感慕齋) 노광두(盧光斗)[1772~1859]는 호조참판을 지낼 때 흉년이 들어 백성들의 살림이 어려워지자 함양·안의현의 환곡에 세금을 탕감해 줄 것을 상소하였다. 1823년에 노광두가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오자, 인근 주민들이 사랑채를 짓겠다고 청하였고, 백성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하여 초가집으로 건립하도록 하였다.

안채의 건립연도는 알 수 없으나 마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증언과 노석규가 이거한 시기를 보면 적어도 1745년경에는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랑채는 경신년에 건립된 기록과 일본식 기와가 사용된 점을 보아 1920년 무렵에도 중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830년에 노광두가 가묘를 건립하였으며, 1945년에 안채를 중수하였다.

[형태]

고가는 남북으로 긴 대지에 북쪽인 뒤에서부터 사당, 안채, 사랑채, 대문채가 남북 축선상에 차례로 배치되어 있다. 현재 각 채별 영역은 담장이 없어 별도의 영역으로 구분되지 않고, 하나의 공간에 배치되어 있다. 안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평면은 좌측부터 부엌 1칸,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 1칸, 툇마루가 딸린 마루방 1칸,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 1칸이고, 배면에도 0.5칸의 툇간이 있어 겹집구조이다. 공포 양식은 장여수장집이며, 상부가구는 도리가 5개인 5량가이다. 기와는 한식기와를 사용하였고, 막새를 사용하지 않고 아귀토로 마감하였다.

사랑채는 정면 4칸, 측면 1.5칸의 홑처마 우진각지붕이다. 평면은 좌측부터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 2칸, 마루 1칸,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 1칸으로 되어 있다. 공포 양식은 장여수장집이고 상부가구는 도리가 3개인 3량가이다. 사랑채의 지붕은 초가였지만 일본식기와로 바뀌었으며, 현재는 한식기와로 교체되었다.

가묘는 정면 1칸, 측면 1.5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공포 양식은 정면에만 초익공으로 장식하였고 배면에는 장여수장으로 마감하였다. 사당에는 단청을 하지 않았다. 대문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현황]

2018년도 기준으로 볼 때 대대적인 수리와 정비로 원형이 다소 상실되었지만 조선 후기 양반가의 주거 양식을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담장을 복원하지 않아 영역의 구분이 없고 마당에는 잔디를 심고 텃밭으로 사용하여 경관의 변화가 많다.

[의의와 평가]

고택 건립 배경에 깔린, 청백리로 이름난 노광두의 일화는 많은 교훈을 안겨 준다. 또한 한국의 아름다운 민가정원인 노참판댁 고가는 조선 후기에서 일제 강점기까지의 상류층 주거의 변화 양상을 잘 보여 주고 있다. 2004년 10월 21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60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1.03.03 업데이트 [의의와 평가] "한국의 아름다운 민가정원인 노참판댁 고가는" 표현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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