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청년단 함양군단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0415
한자 大韓靑年團咸陽郡團部
영어공식명칭 Hamyang Branch of the Great Korean Youth Associatio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동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48년 12월 19일연표보기 - 대한청년단 설립
해체 시기/일시 1953년 9월 10일연표보기 - 대한청년단 해체
최초 설립지 대한청년단 함양군단부 - 경상남도 함양군
성격 청년 단체
설립자 유원문|도성환|서상교

[정의]

1948년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설립된 대한청년단 소속 지부.

[설립 목적]

대한청년단은 1948년 12월 19일 결성되었다. 우익 청년 단체 대표격인 대동청년단을 중심으로 청년조선총동맹(靑年朝鮮總同盟), 국민회청년단(國民會靑年團), 대한독립청년단(大韓獨立靑年團), 서북청년회(西北靑年會) 이외 전국에 산재한 각 청년단체를 대동단결한다는 명분 아래 한 곳으로 흡수·통합하여 청년단을 조직했다.

[변천]

대한청년단은 이승만(李承晩)[1875~1965]을 총재로 하고 최고 위원에 장택상(張澤相)[1893~1969], 지청천(池靑天)[1888~1957], 전진한(錢鎭漢)[1901~1972], 노태준(盧泰俊)[1911~1970], 유진산(柳珍山)[1905~1974], 서상천(徐相天)[1903~1950], 강낙원(姜樂遠), 신성모(申性模)[1891~1960]가 추대되었다. 이범석(李範奭)[1900~1972]이 이끌던 민족청년단은 처음엔 참여하지 않았으나 이승만의 강압에 못 이겨 1949년 1월 20일 합류하였다. 대한청년단은 광범위한 조직망을 이용하여 200만 명에 달하는 단원을 규합하였고, 사상운동과 사상계몽사업을 전개하였다. 대한청년단 함양군단부 대표는 유원문, 도성환, 서상교였다.

대한청년단이 명실공히 대한민국의 유일무이한 청년단이 되었으나 지청천의 대동청년단과 이범석의 민족청년단이 ‘족청’과 ‘비족청’으로 나누어져 암투가 벌어졌다. 1952년 8월에 실시된 제2대 대통령선거 이후 집권당인 자유당의 내분 격화로 대한청년단의 내분도 격화되자 이승만은 1953년 9월 10일 대한청년단 해산을 선포하고 청년단원들은 민병대에 편입시켰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대한청년단은 광범위한 조직망을 이용하여 200만 명에 달하는 단원을 규합하였고, 사상운동과 사상계몽사업을 전개하였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