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건국준비위원회 함양군위원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0408
한자 朝鮮建國準備委員會咸陽郡委員會
영어공식명칭 Hamyang-Gun Committee of the Preparatory Committee for the Establishment of Choseon
이칭/별칭 건준 함양군위원회,함양군 건준위,함양건준위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고지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45년 8월 16일연표보기 - 조선건국준비위원회 함양군위원회 결성
개칭 시기/일시 1945년 9월 7일 - 조선건국준비위원회 함양군위원회에서 경상남도 함양 지역 인민위원회로 개편
최초 설립지 조선건국준비위원회 함양군위원회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면장실
성격 정치 단체
설립자 하준수

[정의]

광복 직후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설립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소속 지회.

[설립 목적]

1945년 8월 15일 광복 후 경상남도 함양 지역의 치안, 행정, 교육 등을 맡아 운영할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변천]

광복 직후인 1945년 8월 16일 여운형(呂運亨)[1886~1947], 안재홍(安在鴻)[1891~1965] 등 중도우파·온건좌파 인사들이 결집하여 일제강점기 말에 조직된 ‘조선건국동맹’을 기반으로 조선건국준비위원회(약칭 건준)를 조직하였다. 일제가 물러간 공백에서 치안, 행정, 교육 등을 관리·운영하면서 건국 작업을 본격 전개하였다. 국내 치안 담당을 위하여 치안대를 설치하는 한편 전국에 145개 지부를 조직하여 각 지역의 국민 생활을 안정시켜 나갔다.

이 과정에서 1945년 8월 16일 오전 10시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면장실에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함양군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강령은 1.우리는 완전한 독립국가의 건설을 기함. 2.우리는 전 민족의 정치·경제·사회적 기본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민주주의 정권의 수립을 기함. 3.우리는 일시적 과도기에 있어서 국내 질서를 자주적으로 유지하여 대중 생활의 확보를 기함 등이다. 조선건국준비위원회 함양군위원회 참여 인사들은 함양 지역 지도급 인물들로 구성되었다. 대표 인물로는 일제강점기 신간회 함양지회 회장 및 부회장을 지낸 양지환과 최성준을 비롯하여 김경도(金景道)[대한독립촉성국민회·제헌국회의원·납북], 박정규(朴井圭)[일본 와세다대학 법과 졸업·국민회·2대 국회의원], 김영상(金永祥)[국민회·3대 국회의원] 등이 있다. 이 밖에 안의중학교 설립자인 이진언과 도석균 등도 포함되어 있다. 한편 1945년 9월 6일 조선건국준비위원회가 인민공화국으로 발전하자 각 지역 조선건국준비위원회들은 지역 인민위원회로 개편되었다. 남해군을 제외한 경상남도 지역에서도 인민위원회가 결성됨에 따라 함양군도 인민위원회가 통치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광복 후 경상남도 함양 지역 치안 유지, 행정, 교육, 자치, 건국 재건 활동을 하였다.

[현황]

조선건국준비위원회 함양군위원회는 ‘군집행위원회’와 ‘상무위원회’로 구성되었다.

군(郡)집행위원회 위원은 양지환, 도석균, 김경도, 김영상, 김석봉, 노길상, 노은식, 박병구, 박정규, 양성홍, 오재화, 이경대, 이민종, 이봉섭, 이시우, 이종언, 이증대, 이진언, 장정현(여성위원), 정병호, 정연섭, 최성준, 최태호, 하갑수, 하충현, 허쌍순(여성위원) 등 26명이다.

상무위원회는 위원장 양지환, 상근부위원장 도석균, 부위원장 이민종·이시우, 총무부장 오재화, 조직부장 하갑수, 산업부장 김경도, 재정부장 이진언, 사회부장 박정규, 치안부장 박병구, 청년부장 김석봉, 문화·선전부장 도석균(겸임), 부녀부장 장정현(허쌍순) 등 9개 부로 조직되었다.

[의의와 평가]

광복 후 여운형을 중심으로 결성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경상남도지부 함양군위원회로 조직되어 일제강점기에 함양 지역 명망가 중심으로 함양 지역의 치안 유지, 행정 등 건국 준비 운동을 전개하였다. 조직 형태상 지방자치단체 기능을 담당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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