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7.27인민대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0399
한자 咸陽7.27人民大會
영어공식명칭 July 27 People’s Congress at Hamyang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 349-1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동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47년 7월 27일연표보기 - 임시정부 수립 촉진을 위한 함양 7.27인민대회 개최
발단 시기/일시 1947년 3월 1일 - 3.1절 기념행사에서 좌익계 군중들이 우익의 국민회와 광복청년회관 습격
발생|시작 장소 함양 7.27인민대회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 349-1 지도보기
성격 사건

[정의]

1947년 7월 27일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개최된 임시정부 수립촉진을 위한 인민대회.

[역사적 배경]

해방 이후 좌익·우익 갈등이 계속되었고, 이는 함양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47년 3·1절 기념행사에서 좌익과 우익이 충돌했다. 함양읍의 함양시장에서 3·1절 행사를 끝낸 좌익계 군중들이 해산하면서 우익의 국민회와 광복청년회관을 습격하여 파괴한 것이다. 1947년 5월 15일 반탁시위 과정에서도 충돌이 발생했다. 우익들은 신탁통치반대 시위를 격렬하게 전개하였다. 당시 이승만이 가능한 지역만이라도 총선을 실시하여 정부를 수립하자고 주장하는 외교활동을 미국에서 전개하고 귀국한 뒤였으며, 또한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를 앞둔 시기였기 때문에 우익진영에서는 신탁통치반대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하였다.

[경과]

함양 7.27인민대회하준수가 주도했다. 좌우합작이 결렬되고, 1947년 5월 21일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재개되었지만 함양 7.27인민대회의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 속에서 준비되었다. 당시 좌익들은 미소공동위원회의 성공을 통한 임시민주정부의 수립만이 당시의 현실적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라 판단하고 있었다. 함양 7.27인민대회는 함양 상림 운동장에서 개최되었는데, 함양 관내의 교사, 면서기 등 당시로서는 엘리트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참석하였다. 함양 7.27인민대회의 참석한 사람들은 일제의 잔재와 봉건사상 타파, 재산의 공정한 분배 등의 주장을 외쳤다.

함양군 마천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함양 7.27인민대회에 참여했는데, 마천면 출신으로서 경성제대 예과를 졸업하고 한때 미군 통역까지 했던 여운옥도 함양 7.27인민대회의 핵심적인 한 사람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인민대회에 우익세력인 광복청년회 지회 특공대 50여 명이 군중 속에 잠입하여 연단의 마이크를 파괴하고 행사를 방해했다. 경찰 역시 행사를 저지하여 좌익들은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의의와 평가]

경상남도 함양군의 함양 7.27인민대회는 경찰의 감시와 우익청년단체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실행되었다. 미소공위 진전을 위한 보다 적극적인 투쟁의 일환으로 공위에 대한 군중적 압력으로 전국적으로 개최된 ‘미소공위 경축 임시정부수립촉진 인민대회’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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