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지도』 「비변사인 방안지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0263
한자 嶺南地圖備邊司印方眼地圖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재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08년 12월 22일연표보기 - 『영남지도』, 보물 제1585호로 지정
현 소장처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1[신림동 산 56-1]
성격 고지도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정의]

18세기에 편찬된 『영남지도』 내에 수록된 함양부 지도.

[개설]

『영남지도(嶺南地圖)』 는 조선 후기 경상도 지역 71개 군현의 지도가 수록되어 있는 지도첩으로, 채색필사본이다. 정확한 제작 시기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제4책에 수록된 안음(安陰)과 산음(山陰)은 1767년에 안의(安義)와 산청(山淸)으로 개칭되므로 이 지도책은 1767년 이전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제5책 「하동지도」에 표시된 읍치는 1745년(영조 21)에 이전된 곳으로 표시되어 있어 이 지도책이 1745년 이후의 상황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로 보아 『영남지도』는 영조 연간인 1745~1767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2008년 12월 22일 보물 제1585호로 지정되었다.

[형태 및 구성]

『영남지도 (嶺南地圖)』 6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4책의 뒷부분에는 1871년에 제작된 함경북도의 「무이진도형(撫夷鎭圖形)」이 덧붙여져 있다.

함양부는 함양군 함양읍·백전면·병곡면·지곡면·수동면·유림면·휴천면·마천면에 해당된다. 읍치는 함양읍 상리 일대에 있었다. 읍치에는 둘레 7,035척[약 2,111m]의 대형 읍성이 있었는데, 지도에도 이와 같은 사실이 반영되어 있다. 읍성 안에는 학사루(學士樓)가 특별하게 표시되어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은 전라도의 운봉·장수와 연결되는 팔량치(八良峙)·중고개[中峙] 등이 있는 지역으로,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신라의 경계선에 있어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반영하듯 지도에는 고성(古城)이 세 개나 표시되어 있다. 서원은 총 5개가 표시되어 있다. 이 중 사액(賜額) 받은 서원은 무오사화[1498] 때 사망한 정여창(鄭汝昌)[1450-1504] 등을 배향하여 1552년(명종 7)에 세워지고, 1566년(명종 21)에 사액 받은 남계서원과 이조판서를 지냈던 노진(盧禛)[1518-1578]을 배향하여 1581년(선조 14)에 세워지고, 1660년(현종 1)에 사액 받은 당주서원 두 곳이다. 지도 오른쪽에 보이는 사근역(沙斤驛)에는 종 6품의 찰방이 파견되어 있었으며, 14개의 속역을 거느리고 있었다.

[특징]

제2책의 「경주지도(慶州地圖)」, 제6책의 「하양지도(河陽地圖)」 등의 뒷면에 ‘비변사(備邊司)’라는 도장이 찍혀 있어서 이 지도첩이 비변사에서 보관하고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1리 간격의 눈금이 있는 방안지에 지도를 그렸으며, 범례를 두어 특정한 정보를 기호화하여 표시하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지도에는 사찰을 당시에 폐사된 것까지도 자세하게 표시하였는데, 이를 통해 유교뿐만 아니라 불교 역시 민간에서 만만치 않은 영향력을 갖고 있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읍치·면·진보·서원·절·사직단 등은 대부분의 군현지도에 포함되어 있는 정보로, 군현집을 제작할 때 일정한 형태로 나타낼 필요성을 느끼고 공통된 기호를 사용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기호화는 과학성과 정확성을 목적으로 하는 지도에서 중요한 표현 방식의 진전으로 간주되며, 영남 지도에 기호로 표시된 정보들은 당시 지도 편찬의 목적과 중시한 사항들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큰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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