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보
-
조선 시대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의 유학자. 강익(姜翼, 1523~1567)은 경상남도 함양군 효우촌(孝友村)에서 태어났다. 증조는 현감을 지낸 강이경(姜利敬), 조부는 현감을 지낸 강한(姜漢)[1454~?], 부친은 승사랑(承仕郞)을 지낸 강근우(姜謹友)이다. 모친은 남원양씨(南原梁氏)이다. 자는 중보(仲輔), 호는 개암(介庵) 또는 송암(松庵)이다. 강익은...
-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효우촌에서 출생한 개암 강익의 문집. 강익(姜翼)[1523~1567]의 자는 중보(仲輔), 호는 개암(介庵)·송암(松庵), 본관은 진주이다. 당곡(堂谷) 정희보(鄭希輔)[1488~1547]에게 옥계(玉溪) 노진(盧禛)[1518~1578], 청련(靑蓮) 이후백(李後白)[1520~1578], 구졸암(九拙菴) 양희(梁喜)[1515~1580] 등과 동...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에 거주한 고대 정경운의 필사본 일기. 정경운(鄭慶雲)[1556-?]의 자는 덕옹(德顒), 호는 고대(孤臺)이다. 본관은 진양(晉陽)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백연리에서 살았다. 당곡(唐谷) 정희보(鄭希輔)[1488~1547]의 손자이다. 박여량(朴汝樑)[1554~1611], 박손(朴𧂍), 노사상(盧士尙)[1559~1598], 정경룡(鄭景龍)...
-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이자 문신. 관직은 지충주부사와 병조판서에 이르렀으며, 노모를 부양하기 위하여 계속 외직을 지원하는 등 효행으로도 이름이 높았다. 경상남도 함양군 북덕곡 개평촌[지금의 지곡면 개평리]에서 태어났다. 증조는 예조참판 송재(松齋) 노숙동(盧叔仝)[1403~1463], 조부는 졸존재(拙存齋) 노분(盧昐)[1437~1478], 부친은 참봉 신...
-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이자 문신. 관직은 지충주부사와 병조판서에 이르렀으며, 노모를 부양하기 위하여 계속 외직을 지원하는 등 효행으로도 이름이 높았다. 경상남도 함양군 북덕곡 개평촌[지금의 지곡면 개평리]에서 태어났다. 증조는 예조참판 송재(松齋) 노숙동(盧叔仝)[1403~1463], 조부는 졸존재(拙存齋) 노분(盧昐)[1437~1478], 부친은 참봉 신...
-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에 거주한 당곡 정희보의 문집. 정희보(鄭希輔)[1488~1547]의 자는 중유(仲猷), 호는 당곡이다. 본관은 진양이다. 정희보의 선조는 남해현 사람이며, 정희보부터 함양에 이사하여 살았다. 만년에는 후진 양성을 소임으로 여겨 노진(盧禛)[1518~1578], 이후백(李後白)[1520~1578], 양희(梁喜)[1515~1580], 강익(姜翼)[1...
-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공배리에 있었던 서원. 당주서원은 1581년(선조 14)에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옥계(玉溪) 노진(盧禛)[1518~1578]을 배향하기 위하여 창건되었다. 나중에 노진 스승인 당곡(唐谷) 정희보(鄭希輔)[1488~1547]를 배향하였다. 1581년에 창건된 서원으로, 1660년(현종 원년)에 ‘당주(溏洲)’라는 편액을 받은 사액(賜額)...
-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유학자 매암 조식의 문집. 조식(曺湜)[1526~1572]의 자는 유청(幼淸), 호는 매암(梅菴)이다.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아버지는 진사 조건(曺健)이고 어머니는 참의를 지낸 김이성(金以誠)의 딸이다. 오늘날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백연리[당시 석복촌(席卜村)]에서 태어났다. 1561년(명종 16)에 남계서원을 창건하여 정여창(鄭汝昌...
-
일제 강점기에 간행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정복현의 문집. 정병하(鄭昞夏)와 정우진(鄭禹鎭)은 모두 발문에 간행 시기를 기록하지 않았다. 다만 권도용(權道溶)[1877~1936]이 발문에서 ‘병자년’이라 했으니 생몰년에 비추어 보면 1936년이다. 정복현(鄭復顯)[1521~1591]의 자는 수초(遂初), 호는 매촌(梅村)이다. 본관은 서산(瑞山)이다. 아...
-
경상남도 함양군 일원에 있는 조선 시대의 사설 유교 중등 교육기관. 『여지도서』에 의하면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는 남계서원(蘫溪書院)·당주서원(溏洲書院)·백연서원(栢淵書院)·도곡서원(道谷書院)·구천서원(龜川書院) 등 5곳이 있었고, 안의 지역에는 용문서원(龍門書院)·황암사우(黃巖祠宇)·성천서원(星川書院)·역천향사(嶧川鄕祠)·구연향사(龜淵鄕祠) 등 5곳이 있었다....
-
일제 강점기에 간행된,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유학자 도희령의 문집. 도희령(都希齡)[1539~1566]의 자는 자수(子壽), 호는 양성헌(養性軒)이다. 본관은 성주(星州)이다. 아버지는 진사 도득린(都得麟)이다. 어머니는 야성송씨(冶城宋氏)로, 송희동(宋熙仝)의 딸이다. 당곡(唐谷) 정희보(鄭希輔)[1488~1547]와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
-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출신인 옥계 노진의 문집. 노진(盧禛)[1518~1578]의 자는 자응(子膺), 호는 옥계(玉溪)·우재(迂齋)이다. 시호는 문효(文孝)이며,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현재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개평마을에서 태어났다. 정희보(鄭希輔)[1488~1547]에게 배우고 김인후(金麟厚)[1510~1560], 조식(曺植)[1501~...
-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공자의 사상과 관련된 학문 및 활동 제반. 함양군의 유교 내지 유학은 조선왕조의 건국과 더불어 사상적인 토대로서 정치와 교육 등 사회 모든 부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성리학의 보급 및 발전의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왕조가 교체되는 여말선초 시기 함양군에는 박충좌(朴充佐), 조승숙(趙承肅)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은둔하며 교육에 종사한 것으...
-
조선 시대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의 유학자이자 문신. 이후백(李後白)[1520~1578]은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촌(介坪村)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계진(季眞), 호는 청련(靑蓮)·송소(松巢)·하의거사(荷衣居士)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관찰사를 지낸 이숙함(李琡瑊), 할아버지는 참봉인 이세문(李世文), 아버지는 이국형(李國衡)이다. 어머니는 임씨(林氏)...
-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문신. 임희무(林希茂)[1527~1577]의 자는 언실(彦實), 호는 남계(蘫溪)이다.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아버지는 참봉 임각(林珏)이다.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권시민(權時敏)[1464~1523]의 딸이다. 남계 임희무는 1527년(중종 22) 함양군 동쪽 서평촌[지금의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서평]에서 태어났다....
-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후학 양성에 전념한 학자. 정희보(鄭希輔)[1488~1547]의 자는 중유(仲猷), 호는 당곡(唐谷)이다. 본관은 진양(晉陽)이다. 1488년(성종 19)에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초곡리에서 출생하였다. 부인 나주박씨와 슬하에 4남 2녀를 두었다. 정희보는 조선 성종 때부터 명종 때까지 교육에 전념한 삼남[충청도·전라도·경상도]...
-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1392~1910) 동안 경상남도 함양 지역의 역사. 경상남도 함양 지역은 통일신라시대 이래로 강주에 속해 있었으며,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왕조가 건국된 이후 1395년(태조 4)에 군(郡)으로 승격되었다. 경상도 진주진관(晉州鎭管) 소속이었다. 조선 후기 영조 때인 1729년에는 함양부(咸陽府)로 승격되었다. 안의현(安義縣)은 조선 건국 후...
-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 정예·정자우(鄭子友)·정장(鄭莊)·정헌(鄭櫶) 등을 시조로 하고 정희보(鄭希輔)를 입향조로 하는 세거 성씨. 진양정씨(晉陽鄭氏)는 진주정씨(晉州鄭氏)라 일컫기도 한다. 계파가 복잡하여 동성동본이면서 정예(鄭藝), 정자우(鄭子友), 정장(鄭莊), 정헌(鄭櫶)을 시조 또는 중시조로 하는 네 계열이 존재한다. 정예를 시조로 하는 충장공파(忠莊公...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활동한 정희보의 문집. 정희보(鄭熙普)[1683~1763]의 자는 중욱(仲旭), 호는 퇴성헌(退省軒),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1725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내섬시 직장(內贍寺直長)에 제수되었다. 1733년에는 사간원 정언이 되었고, 시강원 보덕과 동부승지 등을 지냈다. 문장에 뛰어나 조하망(曺夏望), 강박(姜樸) 등과 교유(交遊)하며 이름...
-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고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한문으로 이루어진 학문 및 문학 전반을 일컫는 말. 경상남도 함양 지역의 한문학은 통일신라 시대 말기의 고운 최치원에게서 찾을 수 있다. 최치원은 당시 천령군수로 부임하여 상림(上林)을 조성하는 등 여러 치적을 남겼고, 그가 자주 오르내리던 관아 옆 누각을 후인들이 학사루(學士樓)라 하여 수많은 작품을 남겨 놓았다...
-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조선 초기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한문으로 지어진 시. 경상남도 함양 지역의 한시는 조선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앞선 통일신라 시대 최치원과 고려 시대 박충좌(朴忠佐) 등의 인물이 배출되었으나 함양과 관련한 그들의 한시는 확인되지 않는다. 여말선초의 조승숙(趙承肅)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몇몇 시구가 그의 작품으로 확인되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