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양주운을 시조로 하고 양천지를 입향조로 하는 세거 성씨. 남원양씨의 원래 시조는 탐라국 개국 신화의 삼신인 가운데 한 사람인 양을나(梁乙那)이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양우량(梁友諒)이 왕실에 큰 공을 세워 남원백(南原伯)으로 책봉되어 남원을 관적으로 하여 시조가 됨으로써 양씨는 제주와 남원 두 관적(貫籍)[시조(始祖)가 난 곳...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공배리에서 세거하고 있는 남원양씨 인물 7인의 시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판각한 목판. 『용성세고』에 수록된 7인은 양천지(梁川至)[1396~1447]를 비롯한 그 자손들이다. 양천지의 자는 장원(長源)이고 호는 성곡(省谷)으로,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그의 아들 양관(梁灌)[1437~1507]의 자는 옥지(沃之)이고...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의 무관. 양관(梁灌)[1437~1507]은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고, 재임 시에는 청렴한 행적을 인정받아 청백리로 평가되었다. 양관은 또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봉양하였으며,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지 않은 효자였다. 양관의 자는 옥지(沃之), 호는 일로당(逸老堂)이다. 본관은 남원(南原)이다. 1437년(세종 19) 정월 23일 경상...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 출신의 유학자이자 문신. 양희(梁喜)[1515~1580]는 청련(靑蓮) 이후백(李後白)[1520~1578], 옥계(玉溪) 노진(盧禛)[1518~1578]과 더불어 함양의 삼걸(三傑)[어떤 분야에서 남들보다 뛰어난 세 사람]로 칭해졌다. 1515년(중종 10)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에 있는 효우촌(孝友村)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남원(南原)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