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0745
한자 鄭復周
영어공식명칭 Jeong Bokju
이칭/별칭 사고,죽당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시대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신은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367년연표보기 - 정복주 출생
활동 시기/일시 1383년 - 정복주, 과거 급제
추모 시기/일시 1701년 - 정복주, 도곡서원에 배향
거주|이주지 정복주 거주지 -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마을 지도보기
부임|활동지 정복주 부임지 - 황해남도 연안군
사당|배향지 도곡서원 -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병곡지곡로 859[평촌리 72]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하동
대표 관직 도관정랑|연안도호부사

[정의]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의 문신.

[가계]

정복주(鄭復周)[1367~?]의 자는 사고(師古), 호는 죽당(竹堂)이다.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아버지는 정지의(鄭之義), 아들은 정육을(鄭六乙)[?~1467], 손자는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이다.

[활동 사항]

조선이 건국되고 1402년(태종 2) 도관정랑(都官正郞)으로 재직할 당시 통치가 용이하지 않은 단주(端州)[지금의 함경남도 단천군]와 청주(靑州)[지금의 함경남도 북청군]의 수령으로 나가기를 자처하여 지경성군사 겸 지병마방어사(知鏡城郡事兼知兵馬防禦事)에 임명되었다.

태종 6년에 정처(正妻)[본처]를 버리고 계실(繼室)[다시 혼인하여 맞은 아내. 곧 후실]을 들인 것 때문에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삭탈관직되었다. 이후 다시 관직에 나가 세종 때에는 연안도호부사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상훈과 추모]

1701년(숙종 27)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도곡서원(道谷書院)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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