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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0736
한자 眞平王
영어공식명칭 King Jinpye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왕족·호족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시대 고대/삼국 시대/신라
집필자 장혜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567년연표보기 - 진평왕 출생
활동 시기/일시 579년 - 진평왕, 신라 제26대 왕에 즉위
몰년 시기/일시 632년 1월연표보기 - 진평왕 사망
묘소|단소 경주 진평왕릉 -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 608
성격 왕족
성별 남성
본관 경주

[정의]

579년 왕위에 오르기 전에 경상남도 함양군으로 피신하였다는 전설의 주인공인 신라 제26대 왕.

[가계]

진평왕(眞平王)[567~632]의 성은 김(金), 휘는 백정(伯淨, 白淨, 白丁)이다. 아버지는 진흥왕의 태자 김동륜(金銅輪)이다. 어머니는 만호부인(萬呼夫人)으로, 입종갈문왕(立宗葛文王)의 딸이다. 복승갈문왕(福勝葛文王)의 딸 마야부인(摩耶夫人)을 비로 삼았다. 신라 최초의 여왕인 선덕왕이 진평왕의 딸이다.

[활동 사항]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실린 경상남도 함양군 군자사(君子寺)에 대한 기록에 진평왕 이야기가 나온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민간에 전하는 말에 따르면 “신라 진평왕이 왕위를 피해서 지리산에 살다가 태자를 낳아서 다시 나라로 돌아가고, 이 절을 희사하여 절로 만들었다.”는 전설과 달리 진평왕에게는 아들이 없다. 그러나 구전을 근거로 추정한다면 진평왕이 경상남도 함양 지역으로 피신한 때는 576년 진지왕(眞智王)이 즉위한 직후라고 볼 수 있다. 진평왕의 아버지인 태자 동륜이 572년(진흥왕 33)에 사망하면서 왕위 계승권자가 아닌 진지왕이 즉위함에 따라 신변에 위협을 느꼈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된다.

군자사는 본래 절 앞에 우물이 있어 영정사(靈井寺) 혹은 영정사(靈淨寺)라 불렸다고 한다. 1800년대까지도 있은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는 폐사되었고,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에 ‘군자동’이라는 이름에 흔적이 남아 있다. 조선 시대에 유행한 지리산(智異山)[높이 1,915.4m]을 유람하다가 경상남도 함양 방향이나 전라북도 남원 방향에서 출발할 경우 군자사에서 하동암과 제석봉을 거쳐 천왕봉으로 가는 여정을 많이 이용하였다. 이에 따라서 군자사에는 많은 여행자가 머물렀기 때문에 군자사 전설이 오래도록 회자된 것으로 보인다.

진지왕이 즉위 4년 만에 사망한 후인 579년 왕위에 오른 진평왕은 왕권 강화를 위하여 중앙 통치제도를 정비하고 군사 기반을 강화하였다. 백제·고구려와 충돌이 잦은 상황 속에서 591년(진평왕 13) 남산성(南山城)을 축성하고 593년(진평왕 15) 성을 개축하는 등 국방 체제를 정비하였다. 또 대외로 수(隋)·당(唐)과의 교섭을 통하여 고구려를 압박하려는 노력을 하였다.

진평왕 대에는 불교가 융성하였고, 호국불교 성격을 띠었다. 진평왕이 579년부터 632년까지 54년 동안 재위한 후 왕위를 장녀 김덕만(金德曼)에게 물려주었다.

[묘소]

한지(漢只)에 장사지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진평왕릉은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에 있으며, 사적 제180호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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