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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0734
한자 孝子
영어공식명칭 Devoted Son
분야 종교/유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장혜금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어버이에게 효를 다한 자녀.

[개설]

효자는 살아 계신 부모를 지극히 모시는 자식을 말하며, 돌아가신 후에 장례나 제사를 극진히 모시는 것도 포함한다. 전통 시대에 경상남도 함양 지역 효자는 『경상도읍지』에 함양 33명, 안의 18명 등 총 51명이 확인된다. 경상남도 함양 지역의 읍지 『천령지(天嶺誌)』에 효자 17명,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2명이 기록되어 있다. 사례를 보면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 여묘(廬墓)[상제가 무덤 근처에서 조그만 집을 짓고 살면서 무덤을 지키는 일]를 극진히 한 경우가 많았고, 부모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상분(嘗糞)[부모의 병세를 살피려고 그 대변을 맛보는 일]하는 경우, 지극한 효성에 하늘이 감응하여 기적이 일어난 경우, 효우(孝友)[부모에 대한 효나 형제간의 우애]가 각별한 경우 등이 있다. 특히 왜적으로부터 부모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진 사례 등이 많이 나타나 정유재란 때 경상남도 함양 지역의 피해가 컸음을 보여준다. 『천령지(天嶺誌)』에 기록된 효자들의 신분을 보면 17명 가운데 14명이 양반이었다. 효부(孝婦)[시부모를 잘 섬기는 며느리]에 대한 기록은 상당히 보이지만 효녀에 대한 기록은 매우 적었다. 효부의 경우 시부모에게 효를 다한다는 점에서 열녀의 활동과 겹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여기서는 제외하였다.

[함양 지역 효자의 유형]

『천령지(天嶺誌)』효자조에는 풍천노씨 집안의 사례가 많이 수록되어 있으며 인물의 생몰연대·배경·신분·거주지 등 상세한 내용까지도 잘 나타나 있어 상대적으로 정확한 정보를 담고 있다. 첫 번째로는 왜적으로부터 부모를 구하기 위해 노력한 경우가 있다. 조광립(趙光立)은 정유재란에 아우 광묵, 광건, 광성, 광덕과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피란하던 중 적이 가까이 오자 어머니와 함께 죽음을 맞았다. 노사상(盧士尙)은 정유재란에 어머니를 모시고 피란을 떠나 피란길에 모친상을 당하였으나 예를 다하였다. 허굉(許宏)은 정유재란 때 아버지를 모시고 숨었는데, 편찮으신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 혼자 활을 당겨 저항하다 부자가 함께 동사하였다.

두 번째로는 병든 부모를 위해 상분한 경우가 있다. 박유효(朴由孝)는 어머니의 병환이 위독하자 변을 맛보며, 지성으로 간호하였다.

세 번째로 부모가 돌아가신 뒤 여묘를 정성껏 한 경우가 있다. 이를 통해 부모가 살아 계실 때는 물론 돌아가신 후까지 효를 다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하맹보(河孟寶)는 부친상에 크게 슬퍼하여 죽만 마시며 3년 동안 날마다 가묘를 찾아뵈었다. 모친상 때에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정수(鄭壽)는 6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상복을 입지 못한 것을 평생의 한으로 여겼다. 정수는 66세에 부친이 돌아가신 연월일이 되자 통곡하며, 최마복(衰麻服)을 입고 묘 곁에서 여묘하며 죽 마시기를 3년 동안 하였다. 특징적인 것은 여묘를 하는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해 ‘가시같이 말랐다’와 자신의 가정을 돌보지 않고 여묘살이를 하였다는 표현이 자주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자신의 몸과 가정을 돌보지 않을 정도로 부모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오건(吳健), 노사예(盧士豫)의 경우는 효우(孝友)가 각별하였다고 하여 형제간의 우애도 효도의 일환임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지극한 정성에 하늘이 감응하여 기적이 일어나는 경우가 소개되어 있다. 박안행(朴安行)의 어버이가 병이 들어 물고기를 먹고 싶어 하였는데 추운 겨울이라 구할 수 없었다. 이에 박안행이 얼음을 두드리며 슬피 우니 물고기가 뛰어나와, 그 물고기를 잡아 드리니 어버이의 병이 나았다고 한다. 이런 유형의 이야기는 위독한 부모를 위해 구하기 힘든 음식을 기적적으로 구해 잡숫게 하자 병이 나았다거나, 간절히 기도하였더니 병이 나았다는 내용 등으로 비슷하다.

[지효감응의 사례]

세종 때 『효행록(孝行錄)』을 중간(重刊)한 후, 이 책의 내용을 아이들에게 외우게 하여 효행을 장려하였다. 『효행록(孝行錄)』에서는 효행에 대한 ‘보응(報應)’을 강조하고 있다. 효를 행하는 이에게 하늘이 도와 온갖 이로움을 주기 때문에 효를 행하는 것은 결국 자신에게 이로운 일이 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천지 만물이 완전히 통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하자면 지극한 효심에 하늘이 감응하여 기적을 일으키는 ‘지효감응(至孝感應)’은 효심이 지극함을 담보해주는 증거물로 작용할 것이며, 효도의 행위로 대표성을 갖는다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효행록(孝行錄)』은 물론 『천령지(天嶺誌)』『함양군사』에도 지효감응 사례가 상당히 많다.

강윤노(姜胤魯)는 일곱 살 때 돌아가신 어머니 시체 옆에서 곡을 하였더니 어머니가 다시 살아났고, 노공수(盧孔壽)는 아버지의 약을 구하러 가는 길에 폭우로 다리가 떠내려가버려 통곡하니 홍수가 그쳤다고 한다. 노삼현(盧三鉉)이 어머니 여묘살이를 할 때는 샘이 솟아났다고 한다. 또한 신영언(申永彦)의 집에 병든 아버지가 누워계시는데 불이 나서 하늘에 비니 불이 저절로 꺼졌다고 한다. 신효선(愼孝先)은 부모의 장사를 지내려는데 큰물로 길이 막혀서 통곡하였더니 물의 흐름이 끊겼다. 이처럼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천재지변마저 극복하는 사례가 있기 때문에, 겨울에 구하기 힘든 과일이나 물고기·동물을 구하는 사례는 상대적으로 매우 흔해서 여기서는 다루지 않았다.

동물[대부분 범]이 도움을 주는 경우도 많다. 여묘살이를 하는 노삼현을 범이 호위해 주었고, 백남승(白南承)도 범의 도움을 받았다. 백남승은 아버지의 약을 구하러 밤중에 혼자 의원을 찾아가는데 큰 범이 나타나서 범을 꾸짖자 범이 물러갔다 한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또다시 그 범이 나타나 나무뿌리를 팠고, 그 뿌리를 가지고 돌아오자 범이 따라왔다. 백남승이 나무뿌리를 달여드리자 범은 물러갔고 아버지의 병도 완쾌되었다고 한다. 서기보(徐麒輔)는 범의 도움으로 어머니께 드릴 사슴고기를 얻었다.

송득상(宋得祥)의 경우는 특이한데, 어머니가 병이 날 때면 자신의 왼쪽 엄지가 반드시 먼저 아파서 미리 대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또한 지극한 효심 덕분으로 이해된다.

최성문(崔聖文)은 효행에 의한 보응을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로 들 만하다. 최성문은 본래 앉은뱅이였는데 오랫동안 아버지를 병간호하였다. 그러다 아버지의 병이 나아 기뻐서 뛰며 춤추려고 하였더니, 자신의 다리가 회복되었다고 한다.

[정유재란과 관련된 효자의 사례]

정유재란 당시 효자의 사례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조광립(趙光立) 형제의 사례이다. 광헌(光獻), 광덕(光德), 광건(光建), 광성(光成) 형제 다섯 사람이 정유재란 때 어머니를 모시고 피란 가다 왜적을 만났는데, 왜적에게 어머니를 살려달라고 빌었더니 왜적이 감동하여 그들을 놓아주고 길을 가르쳐주었다. 그런데 다른 적을 만나서 오 형제가 어머니를 둘러싸고 빌었지만 어머니와 다섯 형제를 모두 죽였다. 그 후 처음 놓아주었던 왜적이 “효자를 죽였으니, 너를 그대로 두면 하늘이 나를 가만히 두지 않으리라”하고 그 적을 죽이고 나무를 깎아 세워 표를 하고 갔다고 한다.

그 외에 유강과 허굉은 정유재란 때 부모님을 모시고 나오려다 해를 입었고, 정대민은 부모가 황석산성에서 돌아가시자 시묘하다가 해를 입었다 한다.

[그 외의 사례]

이 외에도 몇 가지 흥미로운 사례가 있어 함께 소개한다.

신병수(愼炳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어머니가 사랑하며 기르던 개를 잘 길렀다. 그러다 개가 죽어 땅에 묻어주었다. 이의정(李宜禎)은 병든 아버지를 돌볼 때 옷을 직접 갈아입히는 것은 물론, 세탁도 남에게 맡기지 않았다고 한다. 이감(李橄)은 부모님 병을 낫게 하려고 밤낮으로 빌었더니 귀신이 약을 주었다 한다. 월랑(月良)이라는 효녀는 13살 때 범이 어머니를 물려고 하자, 도끼로 범을 쳐 어머니를 구하였다.

이만영(李晩榮) 형제의 어머니는 지아비를 일찍 잃은 후 웃는 법이 없이 아주 엄하였다. 어느 날 이만영이 동생 수영(壽榮)과 함께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렸더니 어머니가 형제를 업어주고, 머리를 어루만지고 젖을 빨리기도 하였다. 형제가 “금일에야 우리 어머님의 웃는 얼굴을 보았다”고 하니, 어머님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너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내가 사람들같이 너희에게 좋게 하여주면 장차 욕이 너의 아버님께 미칠까 두려워하였던 고로 내가 무섭게 한 것이 여기에 이르렀다. 이에 금일 너희들이 잘 컸으니 내가 어찌 웃는 얼굴을 아끼겠는가”라고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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