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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0463
영어공식명칭 Jeolteo
이칭/별칭 사지
분야 종교/불교
유형 유적/터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시대 고대/삼국 시대,근대/개항기
집필자 김동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487년 - 각연대사가 장수사 창건
건립 시기/일시 883년연표보기 - 결언대사가 엄천사 창건
폐지 시기/일시 1950년 - 한국전쟁으로 장수사 폐사
폐지 시기/일시 1783~1899년 - 군자사 폐사
폐지 시기/일시 1783~1899년 - 엄천사 폐사
소재지 용추사 터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 지도보기
소재지 군자사 터 -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군자리 지도보기
소재지 엄천사 터 -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남호리 지도보기
소재지 영은사 터 -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백운리 지도보기
소재지 성안사 터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 지도보기
소재지 덕봉사 터 -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광평리 산 13 지도보기
소재지 용산사 터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교산리 지도보기
성격 절터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창건되었다가 소실된 절터.

[개설]

경상남도 함양군은 북쪽으로 남덕유산, 남쪽으로 지리산이라는 명산이 있어 수행자들이 즐겨 찾았고, 일찍부터 산골짜기 곳곳에 수행처가 마련되었다. 1254년 최자(崔滋)의 『보한집(補閑集)』에서는 “지리산 중에 70여 곳의 암자가 있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조선의 숭유억불정책과 한국전쟁을 포함한 수차례의 전쟁으로 이름만 남긴 채 없어진 암자나 사찰들도 많다. 일부의 ‘사암지(寺庵址)’는 확인되고 있으나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곳도 많다. 장수사 터·군자사 터·엄천사 터·승안사 터·극락사 터 등은 1530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을 살펴보면 그 당시까지 활동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 창건된 사찰의 절터]

함양군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은 안의면 지우산(智雨山)의 ‘장수사 터’로, 487년(소지왕 9)에 각연(覺然)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장수사는 조선 후기까지 수차례의 화재를 당하면서도 중건되었지만 1950년 한국전쟁으로 사찰이 전소되고 보물 ‘용추사 일주문’만 남아 있다.

군자사 터’는 마천면 군자리지리산 자락에 있다. 군자사는 신라의 왕위 쟁탈전을 피했던 진평왕이 머물렀던 곳으로, 후에 경주로 돌아가면서 그가 머물던 곳을 희사(喜捨)하여 절로 만들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17세기 초에 지리산을 유람했던 박여량이나 유몽인 등은 군자사가 원래 ‘영정사(靈井寺)’라 불렸다고 하였다. 군자사는 백제와 국경지역에 위치했기 때문에 전쟁이 빈번하여 흥폐를 거듭하였다. 1198년에는 불일 보조국사가 제자인 진각(眞覺)국사에게 절을 짓게 하였다. 1404년에는 행호(行呼)선사가 중건하면서 사찰을 천태종으로 변경하였다. 1686년에 군자사를 방문했던 정시한은 “사내(寺內)에 법당과 13개의 불전이 있었다”고 하고, 1783년에 두류산을 유람했던 이덕유도 군자사에서 묵었다고 전한다. 그 후로 군자사가 언제 폐사가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1899년에 간행된 『경상남도 함양군읍지』의 불우조에는 “지리산에 있는데, 지금은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2018년 현재 군자사 터에서는 다량의 기와편만 채집될 뿐이다.

엄천사 터휴천면 남호리의 엄천(嚴川)가에 있다. 883년(헌강왕 9)에 결언(決言)선사가 왕명을 받들어 창건했으며, 사명(寺名)도 왕이 하사한 것이다. 낙성법회가 있을 때 헌강왕이 직접 행차하였고, 885년에는 최치원에게 ‘발원문’을 짓도록 하였다. 고려시대인 1128년에 성선(性宣)대사가 퇴락한 엄천사를 중건하였다. 엄천사는 나말여초 남방지역에서 유일하게 구족계를 수여했던 ‘계단(戒壇)사원’의 역할을 담당했던 곳이다. 고려 말까지 화엄종의 대표 사찰이었던 엄천사는 조선 초기에는 ‘자은종’으로 종명을 변경하였고, 인근 안의현의 영각사와 함께 함양군을 대표하는 ‘자복사(資福寺)’로 선정되었다. 함양군수로 부임했던 김종직이 백성들에게 부과되는 차세(茶稅)를 경감시키기 위하여 엄천사 주변에 차밭을 개간했다고 전한다. 1799년에 간행된 『범우고』 함양조에는 절이 엄천의 북쪽 언덕에 있었다고 하지만 1899년에 간행된 『함양군읍지』 불우조에는 “군의 남쪽 30리[약 11.78㎞]에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고 전한다. 현재의 엄천사 터에는 석물을 포함해 기와편[연우원년 윤삼월 십삼일(延祐元年閏三月十三日)명]·토기편 등이 산재해 있다. 인근에는 석종형의 승탑 2기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에는 ‘계화 천휘 화상탑(桂華天暉和尙塔)’이라는 당호가 새겨져 있다.

영은사 터백전면 백운리에 있는 것으로, 신라시대에 영은(靈隱)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영은사의 사적에 대해서는 자세히 전하고 있지 않지만 전하는 유물을 통해서 대략 짐작할 수 있다. 1765년에 영은사 입구에 세웠던 함양 영은사지 석장승[경상남도 민속문화재 제19호]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또한 조선 후기 영은사와 관련 있는 승려들의 석종형 부도 7기 함양 백운암 영은사지 승탑군[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03호]이 현재 백운암 앞에 이건되어져 있다. 1899년에 간행된 『함양군읍지』 불우조에 “백운산에 있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거의 20세기 초에 들어와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승안사[지]는 수동면 우명리 사암산(蛇巖山) 아래에 있는 것으로, 통일신라시대부터 번창했던 곳으로 전한다. 당우는 모두 소실되어 전하지 않고, 인근에 ‘하동정씨의 여재각’과 정여창의 묘소가 있다. 현재 사지에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2층 기단의 함양 승안사지 삼층석탑[보물 제294호]과 함양 승안사지 석조여래좌상[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3호]이 남아 있다.

이외에도 서상면 옥산리에 ‘함양 극락사지 석조여래입상[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4호]’이 있는 극락사 터, 마천면 구양리등구사 터 등이 있다.

[고려 이후 창건된 사찰의 절터]

대표적인 사지로는 덕봉사 터, 용산사 터 등이 있다. 병곡면 광평리에 덕봉사 터가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도 “덕봉사(德峯寺) 천왕점 밑에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사적에 대해서는 전하지 않는다.

용산사[지]는 함양읍 교산리에 있다. 보림사 미륵전에 봉안하고 있는 고려시대 양식의 함양 용산사지 석조여래입상[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18호]은 “용산사 터 부근에서 민가에서 보관”되었던 것을 옮긴 것이라 전한다. 『범우고』나 『함양군읍지』 등에 용산사와 관련한 기록이 전하지 않아 그 구체적인 사적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아마 용산사는 18세기 중반경에 이미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외에도 조선 초기 행호대사가 창건했다는 마천면 안국사 터를 비롯하여, 사적을 알 수 없는 휴천면 운서리운암사 터, 유림면 화촌리의 화장사 터, 병곡면 광평리안정사 터 등이 남아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3.11.29 현행화 [삼국시대 창건된 사찰의 절터] ‘용추사 일주문[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4호]’만 남아 있다. → 보물 '용추사 일주문'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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