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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0428
한자 咸陽白雲庵木造阿彌陀如來坐像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불상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백운산길 85[백운리 산 5-4]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연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674년연표보기 - 함양 백운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조성
문화재 지정 일시 2010년 3월 11일연표보기 - 함양 백운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98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함양 백운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
현 소장처 함양 백운암 -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백운산길 85[백운리 산5-4]지도보기
원소재지 함양 영은사 - 경상남도 함양군 서령 백운산지도보기
성격 불상
재질 나무
크기(높이) 116.5㎝[높이]
소유자 백운암
관리자 백운암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백운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목조 아미타여래좌상.

[개설]

경상남도 함양군 백운암에 있는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다. 조성 발원문에 따르면 1674년(현종 15) 조각승 성조(性照)를 비롯한 7명의 조각승이 제작하였다고 한다. 경상남도 함양군 백운산 영은사에 봉안하기 위해 아미타삼존불을 조성하였는데, 경상남도 함양군 영은사가 폐사하면서 인근 부속암자인 백운암으로 이운되었다. 관음·대세지보살상 중 대세지보살상은 현재 부산광역시 원효암에 있으며, 관음보살은 소실되었다. 함양 백운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2010년 3월 11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98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백운암의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상반신을 앞으로 약간 숙이고, 결가부좌 한 자세로 앉아 있다. 높이는 116.5㎝이다. 높은 무릎에 다리의 폭이 넓고 허리가 짧아 안정감이 있다. 육계(肉髻)[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와 머리의 경계가 없다. 육계 아래 반달형의 중앙 계주가 있으며, 정수리에는 원통형의 정상 계주를 표현하였다. 네모난 얼굴에 눈은 반만 떴으며, 큰 코, 얇은 입술이 특징이고, 입가에는 옅은 미소를 표현해 근엄하면서도 인자한 인상을 준다. 짧은 목 아래는 삼도가 선각으로 새겨져 있다.

옷은 변형식 통견으로 안에 편삼을 입고, 겉에 대의를 걸쳤다. 오른쪽 어깨를 덮은 대의에는 반달형의 주름이 3줄 있으며, 끝을 살짝 반전시켰다. 대의 아래의 편삼은 복부에서 대의 자락 안으로 넣었다. 가슴 아래에는 꽃잎 모양을 한 군의 단이 표현되어 있고, 군의를 묶은 자락은 생략되었다. 결가부좌 한 다리 사이에는 얇고 넓은 두 개의 옷 주름이 바닥까지 내려와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져 있으며, 끝단은 물결무늬로 표현하였다. 양손은 무릎 위에 올리고 있다. 오른손은 손바닥을 아래로 하여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여 엄지와 중지를 맞댄 아미타구품인 중 하품중생인을 하고 있다.

[특징]

함양 백운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을 만든 조각승 성조(性照)는 승일(勝一)의 제자이다. 그는 승일과 함께 1646년에는 전라남도 구례 천은사 수도암 목조아미타불좌상과 대세지보살좌상을, 1648년에는 전라남도 강진 정수사 목조삼세불좌상을, 1651년에는 서울특별시 봉은사 대웅전 협시불좌상을, 1660년에는 청룡사 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을, 1665년에는 경상북도 칠곡 송림사 명부전 석조삼장보살좌상과 시왕상을, 1670년에는 경상북도 김천 고방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을 제작하였다.

백운암의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신체에 비해 크고 가늘고 긴 손, 오른쪽 어깨에 내려오는 옷 주름, 다리 앞 펼쳐진 옷 주름의 표현 등이 승일의 작품과 유사하나 당당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신체 표현 등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의의와 평가]

함양 백운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에서는 복장유물 및 조성발원문이 발견되었다. 이를 통해 1674년 5월에 경상남도 함양군 서령 백운산 영은사에 아미타삼존불상을 봉안하였으며, 불상 제작을 위해 조사복, 이강산, 곽자안 부부를 비롯해 인근 주민 등 200명이 불상을 제작하는데 시주하였음을 알 수 있다. 시주 품목으로 개금불사(改金佛事)[불상에 다시 금칠을 할 때 행하는 의식]에 필요한 금, 채색에 필요한 안료, 복장물에 들어가는 후령통, 생은, 오약 등이 세부적으로 나누어 기록되어 있다. 17세기 불교 조각뿐 아니라 사원경제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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