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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덕유산 공비토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0395
한자 智異山德裕山共匪討伐
영어공식명칭 operation to subjugate communist guerrillas in jiri mountain and Deogyu Mountai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고지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51년 11월 25일연표보기 - 지리산·덕유산 공비[빨치산] 토벌작전 시작
종결 시기/일시 1952년 3월 15일연표보기 - 지리산·덕유산 공비[빨치산] 토벌작전 종결
성격 전투
관련 인물/단체 대한민국 육군|남부군|전투경찰사령부|백선엽|이현상

[정의]

한국전쟁 발발 이후 1951년 11월 25일부터 1952년 3월 15일에 걸쳐 지리산덕유산 일대에서 벌인 공비 진압 작전.

[역사적 배경]

1948년 10월 19일 여순사건 이후 한국전쟁기까지 지리산·덕유산·소백산·태백산 등 산악지대에는 월북하지 않은 채 남한에 잔류한 공비(共匪)[공산당 유격대]들이 많았다. 공비들의 정식 명칭은 ‘조선인민유격대’ 또는 잔당의 의미인 ‘빨치산’이다. 한국전쟁 발발 후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북한군이 퇴각할때 북으로 돌아가지 못한 잔류 인민군과 지리산 일대 남아 있던 옛 빨치산[일명 ‘구빨치’], 태백산 일대에서 남하한 공비 등이 이현상(李鉉相)을 총사령관으로 한 ‘남부군’을 조직하여 지리산·덕유산·태백산 일대를 중심으로 후방 전투를 전개하였다. 1950년 12월 기준으로 약 2만 명의 빨치산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경과]

한국전쟁 중에 휴전회담이 진행되자 대한민국 육군은 지리산·덕유산 일대 공비들을 토벌하기 위해 제1군단장 백선엽(白善燁)을 사령관으로 하고, 전방수도사단[사단장 송요찬 준장]과 8사단[사단장 최영희 준장]의 2개 사단을 차출하였다. 또 서남지구 전투사령부[준장 김용배]와 태백산지구 전투경찰 사령부 및 지리산지구 전투경찰사령부 등 4개 전투경찰 연대와 7개 전투경찰대대 등 총 4개 사단 규모의 병력을 지리산 일대에 투입하였다. 이밖에도 닷즈(W.Dodds) 중령을 비롯한 60여 명의 미 군사고문단이 작전·연락통신·공중연락·심리전 등을 지원하였다.

밴 플리트(James A. Van Fleet) 장군의 지원으로 사천비행장에서 미 공군기를 지원받아 공해 작전을 수행하였다. 부대명은 사령관 백선엽의 성을 따 ‘백야전전투사령부(Task force Paik)’로, 작전 명칭은 ‘쥐잡이’로 명명하였다. 사령부는 전라북도 남원에 설치하였고 약 200명의 장교와 하사관이 주둔하였다.

토벌 작전의 주요 전략은 작전 지역을 몇 개 지역으로 구분하여 지리산 지역을 우선으로 집중 소탕한 뒤 타 지역으로 확대한다는 전략이었다. 제1기 작전은 1951년 12월 1일 밤까지 수도사단이 해상기동으로 전라남도 여수에 상륙하여 광양·하동·원지동에, 8사단은 육로로 남원·운봉·함양으로 진출하여 공격을 펼쳤다. 12월 2일 아침 6시부터 3만여 병력이 산정을 향해 포위망을 형성하고 압축해 들어가는 방법으로 지리산 정상까지 일주일 내 진격하였다. 산골의 가옥과 시설 등은 모두 소각해 공비들이 거점으로 이용할 수 없게 하고, 주민들은 구호소로 대피시켰다. 제2기 작전은 1951년 12월 19일부터 1952년 1월 6일까지 지리산 외곽의 거점을 소탕하였는데, 전주~순천을 잇는 남북선을 중심으로 서쪽은 8사단, 동쪽은 수도사단이 담당하였다. 제3기 작전은 1952년 1월 15일부터 개시되어 재차 지리산을 포위 공격하였으며 토벌작전이 마감된 1월 말까지 수색·추격·매복작전을 전개하였다.

지리산·덕유산 공비토벌 작전은 1951년 11월 25일 시작되어 1952년 3월 15일에 종료되었다.

[결과]

지리산·덕유산 공비토벌 작전 결과 1만 9000명 이상의 빨치산이 사살되어 남부군 중심의 빨치산 세력은 결정적인 타격을 받았다. 이로써 후방에서 ‘제2전선’을 구축하여 주력을 분산시킨다는 북한의 전략방침은 맥없이 무너졌다. 백야전전투사령부는 토벌작전 직후 새로 탄생한 국군 제2군단의 모체가 되었다. 백야전전투사령부에 편제되어 토벌작전을 수행한 지리산지구 전투경찰사령부는 1952년 9월 해체되어 도 경찰국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전투경찰사령부 해체 이후 빨치산의 활동이 빈번해지자 곧 서남지구치안국 전방지휘소가 설치된 뒤 1953년 5월 서남지구 전투경찰대로 확대 개편되어 휴전 이후까지 잔존 빨치산들을 토벌하였다.

[의의와 평가]

지리산·덕유산 공비토벌 작전은 대한민국 국군이 전개한 작전 가운데 최대 규모이다. 지리산·덕유산 공비토벌 작전으로 남한 내 빨치산의 90% 이상을 소탕하여 사실상 좌익세력이 와해시켰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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